사람이 죽으면 예전에는 상여를 따라가며 곡을 했다. 곡을 시작하면 설움이 북받쳐 흐느끼고 흐느끼는 목소리에 또 다른 설움이 몰려와 또 밀리는 설움에 울고 또 울고 운다. 곡은 점점 더 구성지고 곡의 강도가 심해지는 듯 약해지는 듯하고 상여를 따라가는 상여꾼들의 곡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기저기 퍼져가 산을 메우고 강을 울린다. 그런데 실상 소리 내어 곡을 하는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돈을 받고 곡하는 상여꾼이다.
겨울이 되면 눈 덮인 산길을 돌아가는 상여꾼 행렬이 눈에 선하게 떠올려지는 내게 강한 이미지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한편의 영화장면이다. 큰아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엄마는 소식을 들으신 후 꺼어꺽 가슴을 쥐고 속으로 울며 곡을 하듯 자지러지듯 한동안 힘들어 하셨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흐르는 동안 가끔은 한밤중에 엄마의 전화를 받곤 했다. 말없이 한참 계시다가 “오늘은 큰애가 너무 보고 싶다” 조금 꺼억꺼억 하시는 것 같다가 “아니다, 미안하다. 잘 자라” 하시고는 전화가 끊어지는 듯하다가 “참 네 오빠가 좋아하던 노래가 있었는데.. 그거라도 듣고 싶다” 오빠가 좋아하던 이태리 칸조네는 오빠가 자주 불렀다.
같이 듣던 독일 가곡들 그중에도 핏셔디스카우의 겨울 나그네를 아주 즐겨 들었던 기억도 겨울에 특히 눈 내리는 12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는 저녁에는 같은 노래를 밤늦도록 함께 들었다. 올해는 특히 많이 그립다.
오래전 뉴욕에 사시던 고모 내외분을 따라 두 분의 가까운 친지 집을 방문했다. 세 아들과 아버지 어머니의 5중주단의 홈 컨서트를 아늑한 거실에서 감상하며 훈훈한 겨울밤을 즐긴 적이 있다. 밖은 눈이 소록소록 살포시 나무에 내려앉는 보기만 해도 환상의 세계 속에서 따듯한 파이어플레이스의 나무 타는 냄새와 불꽃이 화려하면서도 정겨워 내가 경험한 가장 즐겁고 행복한 겨울의 한 컷으로 생각난다. 올 12월은 눈이 오는 그 겨울에 있고 싶다.
그날 그 가족이 연주한 비발디의 4계중 겨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의 사각사각한 신선한 곡으로 제일 좋아하는 겨울의 곡이 되었다. 유학 초창기 독일 쾰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이 있다. 겁 없이 친구와 함께 배낭여행 비스무리 하게 기차와 히치하이킹을 하며 빠리에서 독일로 여행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위험 천만한일이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쾰른의 성당에서 그레고리안 찬트의 음악으로 엄숙한 예식의 미사를 보고 캐롤을 흥얼거리며 유스호스텔의 별 5개짜리 숙소를 향하며 맘껏 즐거워하던 젊음의 절정이다. 무서울 것도 없이 호기심이 닿는데 까지 마냥 쏘다니던 겨울의 낯선 거리들, 따듯한 커피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마음이 따듯한 충만한 겨울의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이런 겨울과 음악의 추억들이 12월에 즐기는 나의 음악 리추얼이 되었다.
교회의 크리스마스 음악들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곡들을 선정하며 기대되고 흥분되던 여러 해의 경험이 12월의 리추얼 레퍼터리로 첨가 되면서 깊이와 폭이 넓어졌다. 내게 겨울과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것은 바하의 칸타타 #140 깨어 있어라 로 시작하여 비발디의 4계중 겨울, 헨델의 메시아, 마지막으로 베토벤의 9번 합창 심포니로 연결된다. 물론 어린아이들과 다함께 부르는 캐롤은 때가되면 거리에서 차에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부르고 질리도록 반복해서 듣게 되는 리추얼 이기도 하다.
이즈음 점점 강도가 높아가는 테러와 총기사건들을 보며 내가 상여꾼이 되어 눈이 덮인 산을 굽이굽이 돌며 곡을 하고 꺼억꺼억 울면서 풀고 싶다. “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날 같은 시각에 다 함께 상여꾼처럼 행렬하며 곡을 하고 꺼억꺼억 목이 터져라 숨이 막히도록 자지러지게 운다면 이 비극이 조금은 사라질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 같은 상상도 해본다.
그리고 바하, 비발디, 헨델, 베토벤의 모든 음악으로 위로도 용서도 화해도 할 수 있다는 나의 망상이 지구가 돌 듯 계속 머리를 돌아 다시 꿈꾸고 망상하고 쓸모없는 망상이 아닌 쓸데 있는 꿈으로 꾸고 싶다. 아마도 나의 12월 음악의 리추얼은 내 지구가 살아있는 한은 해마다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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