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이전에 나는 엄마한테 살가운 딸은 아니었다. 살갑기는커녕 그 반대였다. 엄마가 일에 바빠 다른 엄마들처럼 내 일을 챙겨주지 않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았더랬다.
내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걱정이 많아서 내 전공, 직업, 남자친구를 선택할 때 늘 안전한 길만 가라고 하는 것도 싫었다. 오죽했으면 임신했을 때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우리 엄마가 한 것처럼 너에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적기도 했다.
그런데 육아를 하다보니, 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 된다. 엄마도 한 사람의 여자고 인간인데, 이십대 후반에 갓 엄마가 된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누렸던 엄마의 엄마노릇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도 새삼 느낀다.
예를 들어 매일 잘 개어져서 옷장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내 옷들이나 항상 친구들 것에 비해 제일 좋았던 도시락 반찬 같은 것들.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실은 엄마의 시간과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라는 사실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엄마는 학교선생님이셨다. 그러니까 요즘말로 워킹맘이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엄마는 매일 아침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서 맥심 커피를 마시면서 한글신문과 영어신문을 읽으셨다.
그리고 영어방송을 들으면서 아침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셨다. 당연히 눈코뜰새 없이 바빴고, 손가락 하나 까닥 안하는 남편과 자식들 때문에 집안일은 온전히 엄마 몫이었는데, 거기에다 학교 선생님이라는 ‘일’ 까지 해내면서 그 바쁜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영어 공부를 했다.
육아와 집안일만으로도 벅찼을텐데 생활에 마모되지 않고 자기를 지켜내려고 고군분투했던 젊은 날의 엄마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신기하다.
자기 중심에 빠져 엄마한테 서운한 것만 많던 내가 엄마의 입장과 처지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다.
육아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그동안 몰랐던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넓어진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엄마같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지만 대신 엄마한테 조금 더 살가운 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