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았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주변 사람들이 물어온다.새해 계획은 세웠는지, 작년에 세웠던 계획은 이루었는지.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여느 때와 같이 하루가 더 지났을 뿐이지만, 우리는 그 시간에 끝과 시작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돌아본다. 숨 가쁘게 달리는 데만 집중했던 사람들은 이제야 밀린 일년 치 성찰을 시작하고 얻은 교훈들을 정리한다.
2015년의 마지막 일주일에 나는 윌리엄 서머셋 모옴 (William Somerset Maugham)의 소설<달과 6펜스>에서 운명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인생의 낭만을 깨달으려면 무엇보다 배우 기질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초연하면서 동시에 몰입하여 자신의 행위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 내가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이보다 더 군더더기 없이 요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찾은 배우 기질의 가장 큰 특징은 호흡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와 가수들의 공통점은 호흡을 자유자재로 조절한다는 것이다.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이자 완성자로 불리는 클로즈 드뷔시(Claude Debussy)는 “음악은 음표 사이의 공간으로 완성된다”라고 말했다. 일 초당 수천만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에서도 여유 있게 대사를 읊어내면서 관객으로부터 몰입도를 끌어내는 배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심마저 든다.기본적으로 자신감과 카리스마를 갖추지 않고서는 단어 사이의 공백과 오고 가는 대화 사이의 공백을 조절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시간에 동요되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재밌는 일이다.
배우 같은 언행으로 적당히 극적이고 멋스러운 삶을 만들어나가는 동시에 자신의 삶의 관객이 되어 객관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줄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의견이 충돌했을 때 느끼는 불만과 불편함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상대의 주장이 논리적이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에 상처가 나서인지 자신만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계속해서 단점을 보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올해에는 새로운 성향의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한층 두터운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새로운 우정과 사랑이 싹틀 때 느끼는 어색함에서부터 점차 호기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물러가는 내 마음의 흐름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배움이었다.일주일 전만 해도 굳건히 닫혀있던 마음의 벽이 몽글몽글 풀어지며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했을 때만큼 신비로운 것도 없었고, 오랜 친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져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었다.
모두들 각자의 무대에서 자기 안에 내재된 본능과 사회가 형성한 규칙 사이에서 적당히 자유를 표출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재연 없는 한 편의 연극이고, 우리 모두는 각 인생의 주연이니까.그러나 그 인생의 관객도 꼭 당신이어야 한다.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지만, 더욱 가까이 관찰해보자.그 자체로 희열일 수 있다.
올해에 나는 관객으로서 나 자신을 지켜보고 이해하는 데 좀 더 많은 시간을 썼다면 새해에는 나에게 주어진 배우 역할에 힘껏 몰입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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