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현장에서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차려입은 묘령의 아가씨가 성난 보수단체 회원들 앞에서 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서있는 사진이었다. 그녀가 든 피켓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며칠 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딸이 위안부였어도 위안부의 입장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을 것이라던 모 단체 대표의 말을 보고 끔찍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좌와 우를 가르는 날선 주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상식에 호소하는 언어와 행동은 한국에서 아직 요원해 보였던 진취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시위문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도 인간에 대한 상식이 침범받은 곳에서 활동하겠다던 그녀의 말은 시위에서 보여준 미소만큼이나 기분좋았다.
또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장희도 학생의 이야기를 보았다. 농업이 좋아서 농업고에 진학한 장 학생은 농업분야 공무원 채용에 응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지만, 시위 활동으로 인해 불이익이 생긴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겠단다. 가난한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이기적인 선택으로 미래 세대에 변화 없는 세상을 물려주는 게 부끄러운 거라는 장 학생의 말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어른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불합리한 사건 사고로 빽빽한 뉴스란에서 이 두 개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너무 육아에만 고립돼 무비판적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지금보다 어렸을 적엔 내가 무엇을 하는지가 나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무엇을 하는지는 거의 중요하지가 않은 것 같다.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일’이 전부가 아니라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날카롭게 인식하면서, 내가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작게나마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 정말 중요하고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신문을 열면 매일 사람에게 실망할 일들이 가득인데도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반짝이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이 되는 것 같다. 지난 주에 새해 결심에 대해서 썼는데, 한가지 덧붙이자면, 새해에는 앎과 삶을 일치시킬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침묵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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