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힐러리 클린턴은 거의 모든 전국 여론 조사에서 대선 후보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힐러리 본인은 물론이고 민주당 지도부나 많은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은 힐러리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경력으로 보나 자금력으로 보나 민주당에서 힐러리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예측과는 달리 전개됐다. 2004년 일리노이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정치 초년병 버락 오바마가 무서운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흑인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느냐’는 일부의 편견은 오바마의 뛰어난 대중 연설과 카리스마에 의해 ‘이제야말로 흑인 대통령이 나와야 할 때’라는 대세론으로 바뀌었다. 특히 ‘변화’와 ‘희망’을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젊은 층과 구태의연한 클린턴 이름에 식상한 유권자들을 열광시켰다.
이런 유권자들의 마음은 그해 첫 대통령 선거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유감없이 나타났다. 오바마가 힐러리를 제치고 1등을 한 것이다. 여기서 힐러리는 2등자리도 존 에드워즈에 내주고 3등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올렸다. 그 다음 열린 뉴햄프셔 예선에서는 2% 차이로 힐러리가 간신히 이기기는 했으나 ‘힐러리 대세론’은 자취를 감췄다.
23개주가 동시에 참가한 가운데 2월 열린 ‘수퍼 화요일’ 예선에서도 오바마는 847명의 대의원을 확보, 834명의 힐러리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며 그 후 넉 달 동안 힐러리와 치고받는 접전을 벌였으나 한 번도 우위를 내준 적이 없다. 결국 그 해 6월 힐러리는 패배를 시인하고 만다.
올 대선에서도 힐러리는 압도적 우위가 예상됐었다. 오바마가 나올 수 없는 지금 경력으로나 자금에 있어 힐러리를 이길 수 있는 후보는 민주당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 판세는 그처럼 만만하지 않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몬트의 연방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일부 여론 조사이기는 하지만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힐러리를 제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힐러리 측은 설사 이 두 곳에서 모두 패배한다 하더라도 흑인과 라티노, 이민자 등 소수계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힐러리가 ‘수퍼 화요일’ 선거에서 이길 것이며 그렇게 되면 민주당 지명은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힐러리 진영은 2008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였던 루디 줄리아니의 예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1년 9/11 테러 때 뉴욕시장으로 인상적인 지도력을 보여준 그는 그 해 타임지로부터 ‘올해의 인물’로 뽑혔고 영국 정부로부터는 ‘명예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 덕에 그는 2007년 말까지 대선 후보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그는 처음 예선이 열리는 뉴햄프셔 등 군소 주를 포기하고 플로리다 등 나중이지만 대의원이 많은 대형주를 공략하는 전략을 짰다. 그러나 뉴햄프셔에서 4등이라는 비참한 성적을 거두자 그의 지지도는 급속히 추락했고 기대했던 플로리다에서마저 3등을 하자 그는 ‘수퍼 화요일’은 가보지도 못하고 1월말 후보직을 사퇴해야 했다.
물론 아직 11월 대선까지는 갈 길이 멀고 전국적으로 힐러리가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연초부터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등 분위기가 2008년을 닮아가고 있다. 그 때와 비슷한 경제 위기가 닥친다면 사람들은 기득권층에 가까운 후보보다는 변화를 약속하는 후보를 택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힐러리에게는 2008년의 악몽이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2008년에는 집권당이 공화당이었다. 그 해 대선에서 맥케인의 참패는 맥케인 잘못도 있지만 아들 부시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를 뒤집어 쓴 탓도 컸다. 2016년 집권당은 민주당이다. 과연 미국 유권자들은 민주당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것인가. 아니면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가 1위를 달리고 있는 공화당을 택할 것인가. 올 대선은 여러 사람들에게 악몽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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