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노나라의 애공 밑에 맹무백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맹무백은 평소 너무나 식언을 많이 해 애공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어느 날 잔치자리에서 맹무백이 몸이 비대한 한 대신에게 “무얼 먹어 그리 살이 쪘느냐”며 놀렸다. 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애공이 “말(言)을 하도 많이 먹었으니(食) 그리 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자기가 한 말을 습관처럼 뒤집는 맹무백 들으라고 비꼰 것이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음식을 많이 먹으면 몸에 살이 찌듯 말을 많이 먹어도 살이 찐다는 뜻의 ‘식언이비’(食言而肥)다.
이 고사성어를 은유가 아닌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가장 뚱뚱한 직업군은 단연코 정치인들이 될 것이다. 거짓말과 식언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으니 말이다. 정치인들이 직업별 신뢰도 조사에서 부동의 꼴찌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런 나쁜 버릇의 당연한 귀결이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온갖 달콤한 공약들을 앞세우며 표를 달라고 구걸한다. 유권자들을 하늘 받들 듯 하겠다는 거짓 약속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오죽하면 “한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황당해하는 경우는 자신들이 한 말을 유권자들이 사실로 믿을 때”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많은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자신이 내건 공약들을 파기하거나 외면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보육대란은 대통령의 식언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파행이다. 박 대통령은 만 5세까지의 무상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선명한 글자로 공약집에까지 박았다.
어디 대통령뿐이겠는가. 당선을 위해 지킬 생각도 없는 공약을 남발하기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식언의 정치’가 일상화되면서 이제는 공약파기에 대한 책임감은커녕 미안해하는 표정조차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 됐다. 정치인들 수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행태를 그냥 그런 것이려니 받아들이는 유권자들의 무감각이다. 하도 많이 봐와서 생긴 의식의 굳은살 때문이겠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대비해 비리와 식언을 일삼는 정치인들은 임기 중에라도 ‘리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지방자치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에게만 적용하고 있는 주민소환제를 국회의원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에 대해서는 중간평가를 함으로써 자신의 공약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허튼소리 빈 공약을 남발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 이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3당 합당과 여야 거래로 흐지부지 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이 있겠지만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약속과 식언, 그리고 비리를 규제하려면 무엇보다 유권자들 무서운 줄 알게 해야 한다.
식언의 정치가 일상화 되고 있는 것은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당선만 되면 끝이라는 정치인들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당선되면 거의 모든 것이 불가역적(不可逆的)이 돼 버리는 시스템이 문제다. 당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긴장감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정치인들의 말은 천금처럼 무거운 것이 아니라 한낱 깃털처럼 가벼운 그 무엇이 돼 버렸다. 불가역적이어야 할 것은 위안부 합의가 아니라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내거는 약속이다. 그리고 이들의 임기는 가역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신뢰의 정치, 책임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이어지는 식언 퍼레이드를 무기력하게 지켜만 보고 있기에 4년, 5년의 세월은 너무 길다. 문제투성이 제품을 ‘리콜’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처음부터 하자 없는 제품을 제대로 고르는 것만 못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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