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러시아 음악가와 소설가들 중 낭만시대의 차이코프스키와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가깝게 다가왔다. 그들로 인해서 다른 러시아 소설가들의 책과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내 나름대로 좁은 지식 안에서 러시아 제국의 화려했던 사교계, 주인공들의 멋진 이국적인 이름들, 끔찍이 춥다는 시베리아 벌판으로 유배를 가는 모습 등을 어린이답게 아름답게 상상 했었다.
중학생 시절 한국에서 보았던 영화 “Dr. 지바고” 와 고등학생 때 미국에서 본 “전쟁과 평화”에서 본 경치와 의상 등은 나를 매혹했고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나라 명단 위에 올려놓았었다. 따라서 지난 해 러시아 선교 여행 때 차이코프스키의 “사계절 (The Seasons)” 연주를 새로 지은 모스크바 현대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감동이었다. 주중인데도 만석이었으며 어린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그가 묻힌 알렉산더 네프스키 수도원 묘지를 방문하였다. 묘지에 세워진 그의 흉상 뒤에 높은 십자가 옆에 날개를 활짝 편 한 천사가 그의 흉상을 보호하는 듯했고, 한 천사는 앞에 앉아서 책을 읽는 조각이 있는데 주변의 다른 예술가들의 비석보다 화려한 것은 많은 사랑을 받아서라 싶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7월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되면 불꽃놀이와 함께 자주 연주되는 “1812년 서곡 (Overture)” 역시 사랑을 받는 곡이다.
나폴레옹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진 러시아를 기념하기 위해 황제 알렉산더 1세는 1812년에 구세주 성당(Cathedral of Christ the Savior) 건축을 선포하였으나 건축 진행이 연기되며 40여년에 걸쳐 완공되기 1년 전인 1882년에 옆에서 텐트를 치고 음악회를 열어 “1812년 서곡”을 처음 연주 발표했다고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 제국의 옛 수도로 담긴 이야기도 많고 고풍의 건물들이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곳에 도착해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을 듣게 되었는데 잊었던 옛 친구들이 생각나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인 선교사님이 문학에 박식하고 꼼꼼하여 도스토옙스키가 거주하며 “죄와 벌”을 배경으로 썼다는 아파트 단지를 안내하여 주었다. 서민들이 거주하는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에 비추어진 그의 아파트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무자비한 고리대금업 노파의 삶을 비도덕적이라 판단하고 살인한 후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민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합리적이고 무신론자 적이었던 이 주인공은 매춘부 소냐를 사랑하게 되며 그의 권유로 자수를 결정하고 시베리아의 감옥에 보내진 이야기였다. 이를 계기로 라스콜니코프는 종교적이 되고 정신적 부활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의 아파트 앞 몇 블락을 걸으며 나는 작가의 체취에 취한 듯 하였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수도원 묘지에 묻혔는데 그의 비석 앞에도 자주 꽃다발이 놓여 아직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젊은 시절 왕정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총살형이 선고되었고 총살이 집행되기 직전에 극적으로 형 집행이 중지 되었다. 그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으며 감옥에서 죄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의 사회주의 사상은 기독교적 인도주의로 변화하였다. “죄와 벌”이 그 후에 쓰여 졌으니 라스콜니코프의 변신은 자신의 이야기일 것인데, 총살형이 극적으로 중지 되었다는 곳을 저녁에 걸으며 150년의 세월이 초월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화가 되어가며 소설과 음악과 미술을 통해서 만났던 세계의 예술가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활동하던 장소들 그리고 그들이 흙으로 돌아간 곳들을 방문하며 그들의 삶과 철학과 믿음을 느낄 수 있고 그들에게서 간접적인 영향을 받음이 감사했다. 문화와 언어와 시대와 배경은 상이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믿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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