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멕시코에 사는 오랜 친구 부부를 만나러 긴 여정에 오른다. 자동차로 일박 이일을 달려 Albuquerque 근처 소도시에 이르러 마을 안 쪽으로 들어가자 아도비 형식의 황토색 집들이 눈길을 끈다.
집앞의 작은 길들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 길들로 황토색 집들과 어울려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이룬다.
얼굴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친구들은 우리를 반긴다. 반가운 포옹을 나눈 뒤 겨울 내 쉬고있는 텃밭 가운데 길을 낸 작은 안마당을 가로질러 실내로 들어서자 발 바닥에 닿는 벽돌 바닥이 따스하다.
온화한 햇살 가득한 거실엔 인디안 식의 양탄자와 등받이가 닳아 가죽의 갈색이 벗겨져 나간 흔들의자와 제법 단단해보이는 거무스름한 색의 거친 나무 탁자가 인디안 문양의 담요가 걸쳐져 있는 소파 앞에 묵직하게 놓여있다.
역시 소박한 나무 식탁과 오래된 장이 놓여있는 다이닝 룸에는 커다란 창을 통해 햇살이 깊숙히 파고들어 창가에 놓인 화분의 초록 잎들 위를 지나 바닥의 붉은 벽돌위에 황금 빛으로 사각 창을 그리고 있다.
우리들보다 예닐곱살이 많은 이 친구들, 유대계 백인으로 뉴욕태생인 남편과 푸에르토리코 태생으로 스페니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아내, 이들의 직업은 스토리텔링이다.
약 이십오년 전, 에스프레소 등등 맛있는 커피류를 만들고 커다란 쥬서기로 손님들에게 신선한 야채쥬스를 짜주곤 하던 자그마한 가게를 할 때였다.
화창한 어느 날 아침, 곱슬머리에 약간 마르고 키가 큰 백인 남자가 들어오더니 흙이 묻은 당근 한다발을 내밀며 하는 말 “이 당근하고 커피 한잔하고 바꾸면 어떨까?”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지금 커피를 마시고싶은데 가진 돈은 없고 해서 집에서 유기농으로 기르는 당근을 뽑아왔노라, 너희는 야채쥬스에 당근을 사용할테니 이 당근과 커피를 맞바꾸자는 것이었다.
아이디어가 재밌기도하고 별로 손해날 일도 없으니 흔쾌히 우린 커피와 당근을 맞바꾸어 주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같이 이런 저런 행사도 치르고 서로 도우며 지내오던 중 십년쯤 전에 그들은 뉴멕시코로 이주하였던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그 곳의 건조한 기후가 그들을 괴롭히던 천식을 낫게하였기 때문인데, 그들의 면역체계를 건강하게 바꾼 것은 기후보다는 흙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든다. 주 도로 외엔 거의가 맨 흙이요 대부분의 집들 또한 흙 벽돌로 지어졌으니 흙과 같이 사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테니 말이다.
가방을 풀자마자 이 마을 옆을 지나는 리오 그란데 강 둑을 걷는다. 콜로라도에서 발원하여 뉴멕시코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멕시코와 텍사스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멕시코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길고 긴 강, 리오 그란데 강은 이 마을 옆으로 지나갈 때는 그 폭을 좁혀 물결조차 없이 고요하기 짝이 없다. 강물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진 맨 흙의 둑 길을 따라 주변은 스산한 겨울 나무 가지들이 먼 산과 하늘을 배경으로 그물처럼 얽혀있다.
강은 멈춘 듯 흔들림 없고 시간조차 이 풍경에 가두어진 듯 적요하다. 다갈색 잔 가지들이 무수히 숲을 이룬 강 가 작은 둔덕에 잿빛 두루미들이 한가롭다. 멀리 눈 덮인 산의 붉은 요철이 강인하게 두드러져 보이는 해 질녘, 서쪽 하늘 빛은 불타오른다. 우린 좀 더 강둑을 걷는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로 새들이 날아오르는 광경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달이 산 너머에서 붉은 달무리에 둘러싸여 서서히 드러나는 광경에 탄성을 지른다. 사방이 어둠에 잠기자 매콤한 한기가 온몸에 스민다.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오리온 성좌를 중심으로 하늘이 돈다. 현기증이 난다. 달빛은 깊은 푸른빛을 온통 흩뿌리고 수없는 별빛은 눈에 와 박힐 듯 영롱하다.
리오그란데 강 가에서 난 문득 누구에겐지 무엇때문인지 모를 감사함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삶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들 위에 저 달과 별들이 은총처럼 내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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