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활원서 지병으로…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
김응태 전 워싱턴 평통 회장이 15일 새벽 5시10분, 입원 중이던 애난데일의 리우드 재활원에서 78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고인은 1938년 평북 의주생으로, 1970년대와 80년대 군사독재정부 시절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의로운 신념의 사나이였다.
용산고와 국민대 행정학과를 마쳤으며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그는 1969년 도미해 1972년 유신반대 재미 범교포 투위 위원장을 시작으로 반 유신독재 운동에 뛰어들었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후원회, 김대중 선생 납치 구명운동, 3.1 명동성당 사건 당시 재미 시위 등을 주도했으며 78-80년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부의장을 역임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1인 삭발시위를 통해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거를 세계에 고발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광주민주항쟁’을 제작해 배포했으며 83년 재미 광주민주항쟁 기념사업회장을 맡았다. 85년에는 워싱턴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안전귀국 추진위원장을 지내는 등 고 김 전 대통령과 각별한 동지적 관계를 맺었으며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도 지냈다.
이러한 정치적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 후보 워싱턴 후원회장과 노무현 대통령 후보 워싱턴 후원회 준비위원장을 역임했다.
한인사회에서는 이민 초창기인 1972년 워싱턴 희망의 소리 방송 대표, 고응표 회장 재임 시(74-75년) 워싱턴한인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2003년-05년까지 제11기 워싱턴 평통 회장을 역임했다.
장례예배는 최종 확정되진 않았으나 오는 20일(일) 오후 4시 고인이 장로로 봉직했던 페어팩스 소재 수도장로교회에서 조명철 목사의 집례로 엄수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선자 씨와 2남 3녀가 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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