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는 샌프란시스코를 연거푸 3번 올라간 적이 있다. 8월 유니온 스퀘어에서 열린 한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고, 9월에는 광복절 50주년 행사 때 정상기 총영사님의 초대를 받고 학생 4명을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바로 그 다음달 10월에는 이종문 박물관인 아시안아트뮤지엄에서 열린 추석 갈라쇼에 참여했다. 그때 한국어과 학장님의 파격적인 도움으로 모든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군인학생들을 모아 연습하는 일도 힘든 일이지만 군인학생들을 데리고 행사지를 찾아가는 일은 더 어렵고 복잡하다. 어쩜 부채춤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힘든 것 같다. 서류 작성하는 일도 서툴고, 허락을 받아 어디를 간다는 것이 너무나 까다로워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부채춤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방외국어대학과 한국을 알리고, 부채춤 배우는 학생들의 한국어 공부에 보탬이 되고, 한국문화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해 아시안아트뮤지엄 앞에서 한시간 동안 부채춤을 추었다. 말이 한시간이지 밤 날씨는 왜 그리 추운지, 학생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7분짜리 부채춤을 아시안아트뮤지엄 앞에서 1시간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래도 VIP 손님들이 들어가는 동안 계속 부채춤을 또 추고, 또 추고 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행인 한명이 “와, 너무나 아름다운 중국 부채춤!”이라고 감탄했다. 내가 중국 부채춤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일본 부채춤?”이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이건 한국춤이라고 분명히 말하면서 부채춤을 계속해야겠다고 내 마음을 묶었다. 행인은 다시“ 그래? 그럼 한국은 어디에 있는 나라인데?”라고 물었다. 난 할말을 잃었다. 1988년 올림픽을 주최한 나라인데…이렇게 모른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한국과 한국부채춤을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이 더 강하게 든 것 같다.
해마다 음악과 안무를 혼자 열심히 연구하고 편집하고… 그래서 단 한해도 같은 음악 같은 안무는 없었다. 음악 역시 늘 주류사회인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연구했다. 2년전에 어떤 사람이 부채춤 음악이 너무 좋다고 그 음악을 얻을 수 없냐고 묻기도 했다. 그 음악 역시 내가 여기 저기서 편집한 것인데 아마 퓨전음악이였기에 좋아했던 것 같다. 앞으로 전통음악보다는 퓨전음악을 계속 사용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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