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영화 ‘돌아온 자’ (The Revenant)중 가장 인상적인 것의 하나는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곰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일것이다. 곰에게 수없이 물어뜯기고 밟히면서도 끝까지 저항하는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볼만 하지만 저돌적인 곰 연기도 만만치 않다. 물론 이 곰은 진짜 곰은 아니고 컴퓨터 그래픽이지만 가짜라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하이텍의 발전이 놀랍기만 하다.
이 장면을 더욱 리얼하게 하는 것은 곰의 울음소리다. 제작진은 사실에 가까운 곰 목소리를 내기 위해곰이 울 때를 기다리며 50번 가까운 녹음을 했다. 고통 받는 곰의 목소리를 구할 수 없자 병든 말의 비명 소리를 녹음해 합성했고 곰이 침흘리는 소리는 낙타가 침 흘리는 소리로 대체했다. 아주 가까이서 나는소리는 녹음자 본인의 숨소리를 합성한 것이다. 이런 정성이 모여 마치관객이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장면 장면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카데미 상은 그냥 거저 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얼어붙은 광야와 숲 속, 격류를 보는 것만도 표 값이 아깝지 않다. 극의 무대는 1800년대 초 미주리지만 제작진은 광야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캐나다 앨버타와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에서찍었다. 실제 이곳에 가더라도 이 영화에 나오는 장관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돌아온 자’가 자연미의 극치를보여준다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오른 ‘빅 쇼트’는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인 부동산 버블의 형성과 붕괴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모기지 담보 채권’ (MBS), ‘담보부 채무’ (CDO), ‘디폴트 스왑’등 보통 사람은 알아듣기 힘든 어려운 용어가 수없이 나오는 복잡한 과정을 최대한 관객의 이해를 도우며풀어나간다.
영화의 줄거리는 2000년대 중반미국이 미증유의 부동산 거품 광풍에 휩싸였다는 것을 알아챈 소수의투자가들이 이 버블이 터졌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가를 예측하고 그럴 경우 가격이 오르는 금융상품을 만들어 투자해 수 억 달러를 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아깝게 ‘각색상’을 받는데 그쳤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은부동산 버블이 터져질 경우 그 주범인 월가의 투자 은행가들은 법의 심판을 피해가고 대신 이민자들이 그죄를 뒤집어쓸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그 뒤 벌어진 사태는 그의 말이틀리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벌어지고 있는 트럼프 돌풍과 이민자 비하 풍조는 부동산 버블로 인한금융 위기와 백인 중산층 몰락 없이는 설명하기 힘들다.
역시 작품상 후보로 오른 ‘스파이의 다리’는 냉전이 한창이던 50년대 미국과 소련과의 스파이 교환 협상 과정을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 변호사로 나오는 탐 행크스도뛰어나지만 남우조연상을 받은 마크 라일런스의 연기도 일품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팟라이트’는 한 때 가톨릭교회에 널리퍼졌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파헤친 보스턴 글로브지 탐사 보도팀 이야기다. 이 영화는 전미 비평가협회작품상과 각본상, 미국 배우 조합상의 작품상인 ‘베스트 앙상블 캐스트’를 받아 오스카상 수상이 유력시돼 왔다.
그러고 보면 아카데미 작품 상 후보에 오른 여덟 편 중 절반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소설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세계 못지않게 관객과독자를 강력하게 움직일 수 있음을말해준다.
한 극장에 앉아 하루는 1800년대 미주리의 광야와 숲속을, 또 하루는 1950년대 미국과 베를린을, 또다른 날은 2000년대 중반 월가와보스턴 가톨릭교회의 실상을 지켜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영화의 힘이자 마술이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 영화의 힘과 마술이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할리웃이 세계 영화계를 오래도록 주름잡고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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