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너 나 몰라? 팔복상회 아들인데?” 우리 집은 금성 목욕탕이었잖아. 난 공설시장 입구 영흥상회 딸이고, 나 천일 모자점, 우체국 옆 국수집, 진도상회 양은집 말이야. 연동 튀밥동네서 살던 용식이고 카도에 있던 점빵, 다리 밑에 연탄집 있었잖아....
아는 이름은 가끔 있고, 대개는 얼굴이 가물가물한 급우들. 서로 자신을 알리려고 애를 쓴다. 이미 톤이 낮아진 텁텁한 음성은 저절로 존칭어가 나온다. 반 세기만에 밴드라는 초등학교 동창모임을 만들면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한덩이씩 감자 줄기 메듯이 따라 올라온다. 아무리 용을 써도 마치, 등 가려운 부위를 누군가 시원히 긁어 주지 못했을 때 느끼는 ‘바로 거기’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도 마냥 웃고 웃어서 좋다. 1학년 때 봄 소풍 사진이 올라왔다. 불과 50년 전인데 자녀를 동반한 어머니들은 한복 차림이었고 너도나도 사발을 얹은 것 같은 고데 머리였다.
아마도 당시에 유행했으리라. 우리들은 아마 ‘눈을 감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던 듯 눈에 힘을 준 모습이다. 그중 깊숙이 꼬옥 눈을 감은 몇몇 친구들이 착해 뵌다. 아무도 웃는 학생이 없고 선생님은 목을 아주 반듯이 세운 근엄한 모습이다. 벚꽃 흐드러진 봄날 야외에서...
여태까지 수십년을 잊고 지냈던,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 일상에서 까마득히 잊혀졌던 이름들은 기억 어느 쯤에 저장되어 있었을까...정신 간호 수업이 떠오른다.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잠재의식을 배우며, 자신들의 기억을 꺼내 보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이름을 기억해 보라’고 지시되었다.
조금 전까지 현실에서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이름이 떠오르면, 그건 잠재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누군가 엉뚱한 이름을 대면 ‘그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즉 분별할 수는 있지만 재생할 수는 없는 기억, 이건 무의식에 담긴 것이다.
실제로 회상요법(Reminiscence therapy)은 노인 정신치료에서 중요하게 사용된다. 치매나 우울증 환자도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건 어릴적 친구와의 회상이다. 과거는 어느 시간도 버려진 것이 아니고 현재의 위치로 나를 데려오고, 어디엔가 저장되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안에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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