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산 장려 정책 포스터를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 포스터에는 “하나는 외롭습니다 -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라고 쓰여져 있다. 사실 지난날이 생각나 많이 억울했다. 미국에서야 농담삼아 딸 아들 딸 아들 두어서 “하오 하오 (好好) – 매우 좋은 거죠!” 하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지만, 30여년 전만 해도 가족 모두 다같이는 창피해서 다니지도 못했던 한국이었다.
“내 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되자”, “셋부터는 부끄럽습니다” 등의 산아제한 포스터가 여기 저기 붙어있었기에 죄인으로 살았던 그때였다. 동사무소 가서 호적등본이라도 떼면, 동사무소 직원이 또 뭐라 무안을 줄까 떨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줌마 대학 나온 사람 맞아요?”라며 아예 대놓고 말하기도 한 것 같다. 다같이 나갈 일이 있을 때엔 맏딸아이는 항상 몇 미터 뒤에서 걸어오는데, 잘 오고 있나 뒤를 돌아다보면 “이모, 따라가고 있어요, 걱정마요”라고 말했던 웃픈 기억도 난다.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이어야 하는 시대에 셋이면 행복의 양은 줄어들고 심지어 부끄러워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박혀 있었던 사회였기 때문이다. 나를 제일 괴롭힌 슬로건은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좁은 땅 넓게 살자”인데 그 문구는 볼 때마다 내가 우리나라 땅을 비좁게 만든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남매로 자란 나는 좀 외로웠다. 책만 보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엄마 밑에서 그냥 항상 조용했던 집이었는지, 난 아이들을 많이 낳고 싶었다. 목사 사모라 울 엄마는 첫애 낳고 나서도 ”이제 그만 낳아라. 교인들이 다 너희의 자녀들 아니니?” 하셨고, 둘째 낳고는 “이제 아들 낳으니 됐다” 하셨다. 셋째는 부모님이 1년 교환교수로 외국으로 나가셨을 때 갖게 되었는데, 들어오신다는 말에 내 첫마디는 임신 들킬까봐 “왜 벌써 와?”였다. 넷째는 우리 부부가 미국으로 강의 오게 되었을 때 임신 6개월이었는데 미국에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 소식을 드디어(?) 알렸을 때 “절대 한국 들어올 생각하지 마라”라는 꾸중 듣고 진심으로 무서워 미국과의 인연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엄마가 나이 드시고 적적하셔서인지, 아님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에 영향 받으셔서인지 요즘엔 “네가 아이를 많이 낳기를 잘하였다” 하시며 나를 부러워하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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