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8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신문지상에는 교황과 트럼프의 설전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멕시코 순방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교황이 그간 미국 이민자와 불법 입국자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왔던 트럼프를 언급하며 “누구든 다리가 아닌 벽을 세우는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 발언에 대하여 트럼프는 지체 없는 반격을 가했으니 “종교 지도자로서 다른 이의 신앙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교황의 이러한 행위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받아쳤던 것이다.
이는 수세기 전이었다면 당장 파문을 당했을 발언이다. 과연 기현상이라 할 만하다. 백인 우월주의와 남성 우월주의를 전혀 감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트럼프가 21세기 세계 최강대국의 대선주자로써 꽤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이 사안의 심각성과 관계없이 때로 사실상 희화적이기까지 함에도 공화당내에서 그를 넘어서는 대선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내심 은밀히 박수를 보내고 있는 이들이 백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기이하다.
어쨌든 그가 시민권 획득에 관하여 속지주의의 철패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비현실적인 것으로 고려되고는 있다 해도 남미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책 중 하나로 국경에 벽을 설치하는 것에 관하여는 찬성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는 점은 사실이다. 불법 체류자들로 인해 야기되는 고용 문제와 세금 문제 등은 이미 미국의 심각한 사회문제이며 정당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커다란 정치적 이슈이다. 그만큼 교황의 ‘다리’에 관한 소견은 어찌 보면 감상적인 또는 비현실적인 언급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한마디로 정치를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철없는 소리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분의 말속에서 깊은 비애와 고통 받고 있는 민족에 대한 체휼을 느낀다. 같은 대륙 안에 국경을 맞대고 살아가는 두 국가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와 힘의 비정상적인 편중, 이와 같은 분리주의의 비정함, 따라서 비참한 삶을 털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멕시칸을 비롯한 남미인들, 그리고 살인과 강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밀입국의 과정을 고스란히 감내 할 수 밖에 없는 그네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다. 이 땅의 불의함에 대한 통찰이 교황의 이 ‘다리’라고 하는 한 단어에 함축 되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그리고 세상이 혹독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어떤 이일까를 생각한다. 공감 없는 해결책만 제시하는 세상의 정치에 우리는 분노조차 잊었다. 다리를 놓든 벽을 세우든 아픈 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먼저 잘라낼 환부부터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먼저 바라보는 그런 혜안을 가진 이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적어도 한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라면 그래야 한다. 우리의 고통을 같이 아파해주는 이의 결정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흔쾌히 따를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고국의 총선도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선거의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미국과 한국, 모든 이들이 바른 한 표를 행사해 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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