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통계로 이루어진 빅 데이터(Big Data)가 사람의 마음을 캐는 따뜻함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Mining Minds, 마음을 캐는 광부라는 말처럼, 빅 데이터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온 길의 흔적을 모아 평균이라는 울타리를 세워준다. 빅 데이터를 통해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구나’라는 안도감과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무한히 수렴해도 0에 닿을 수 없는 함수처럼 나와 완전히 일치한 상황을 가진 사람도, 내가 체감하는 삶의 무게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터넷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단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는 검색엔진과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내 마음을 알려주는 기능은 없다. 생활 패턴을 예측해서 몸의 동선을 최소화 시키는 사물인터넷(IoT) 서비스로 몸과 삶은 편리해졌지만 마음을 알아주는 기술은 없다.
평소엔 지나치던 자동차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들리고, 어제는 아무렇지 않게 입었던 옷들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숨 가쁘게 뛰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할 때이다. 기억을 기록하는 과정은 마치 정보의 바다에서 즐겨찾기를 등록하는 것처럼 오로지 나를 위한 사용 설명서를 만드는 일이다. 빅 데이터가 울타리처럼 보편적 테두리를 긋는 역할을 한다면, 그 안에서 열매를 심고 꽃을 가꾸고 나만의 밭을 일구는 과정은 작지만 유일한 나만의 데이터를 쌓는 일이다. 기억의 발자취를 가꾸는 건 바쁜 생활에 지친 자신을 돌보는 손길이 될 수 있으며 메마른 삶에 숨결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자신이 본 영화와 처음 듣게 된 노래들을 엑셀로 빼곡하게 정리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막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사람이였지만, 추억을 소중히 다루며 세세히 기록하는 모습을 보며 진실하고 순수한 태도로 사람을 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하나를 들어도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많다는 건 삶의 풍부함을 뜻했고 작은 네모칸을 가득 채운 엑셀 목록들은 정갈하게 손질된 비옥한 논밭을 연상시켰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스스로를 격려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내가 하는 방법은 날짜가 아닌 감정으로 기준을 나누는 것이다. 날짜가 바뀔 때마다 매일 일기를 써야 하는 압박 대신 쓰고 싶은 감정이 들 때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자유롭게 서술한다. 날짜를 쓰는 칸엔 “서늘한 구름이 뿌옇게 마음을 감춘 날”이라며 내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적는다. 구름은 감정이 없고 날씨 역시 내 의지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한 뼘만한 연필로 마음 깊숙이 묵혀 뒀던 감정을 조용히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덧 흘러가던 구름도 내 편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생은 흘러가며, 사물은 낡아지고, 풍경은 옅어진다. 그래도 괜찮다. 기억은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지만 해변에 깔린 모래알을 비추는 햇살처럼 다시금 반짝이게 한다. 글을 쓴다는 건 돋보기로 마음을 확대하며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기록들이 나를 이해하는 방법이기에 미숙하면 미숙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렇게 담담히 자신을 둘러싼 공기를 기록한다. 빅 데이터가 아닌 작지만 유일한 나만의 데이터를 쌓으며 마음속에 쉼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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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진(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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