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 건너 또 물 건너 (渡水復渡水:도수부도수)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며 (看花還看花:간화환간화)
봄바람 강뚝길을 걷다가 보니 (春風江上路:춘풍강상로)
어느 사이 그대 집에 이르렀구려 (不覺到君家:불각도군가 )
위는 중국 명나라 때 고계(高啓)라는 시인이 화창한 어느 봄날 호은군이라는 친구를 찾아가면서 읊은 시이다. 시의 제목은 <심호은군 尋胡隱君>인데 은군(隱君)은 숨어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심은 “찾을 심( 尋)” 이니까 시 제목은 호(胡)씨 성을 가진 은군자를 찾아 간다는 뜻이 된다. 이 시는 원래 4절까지 있는데 위 첫 구절이 가장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보통 한시에서 같은 글자를 두번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기(起)와 승(承)에서 단어를 반복 사용함으로 오히려 읽는 이의 감흥을 높인다. “물 건너 또 물을 건너,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며..” 하는 “도수부도수(渡水復渡水) 간화환간화(看花還看花)..” 하는 표현이 나는 너무 좋아서 아름다운 이 봄날, 수선화와 철쭉꽃이 어울려 피어진 동네 좁다란 길을 걸으며 이 시를 외운다. 시인은 그렇게 강뚝길을 걷다보니 어느듯 벗의 집에 이르렀단다. 맘 가는대로 걸음 내키는대로 친구를 찾아가고, 친구는 이렇게 불쑥 찾아온 벗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게 맞는다. 그래서 이어지는 다음 절,
“오늘 꽃 밭에서 술을 마시네
즐거운 마음에 몇 잔 술에 취했네
단연 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늙은이를 위해 핀 것이 아니라고 말 할걸 (不爲老人開)”
2.
중국 남북조 시대(439-589)에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인품이 좋은 사람이 있었다. 양(梁)나라 임금인 무제(武帝)가 여승진을 지방 장관으로 임명하였는데 그 임지가 바로 여승진의 고향인 남쇠주(南衰州)였다. 임지에 부임한 여승진은 행여 공무에 사(私)가 개입될가 염려하여 형제는 물론 친적들까지 관아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하였고, 부패의 근원인 군역과 조세행정을 바로잡고,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돌보듯 백성들의 애로사항을 잘 처리하여 주었다. 참으로 여승진은 유능한 관리이면서도 사생활은 검소하였고 교우 관계가 겸손한 군자(君子)였다.
당시 나라에는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관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은퇴한 다음 자기가 살 집을 찾다가 결국 역시 고향으로 은퇴하여 살고 있는 여승진의 바로 옆집을 구입하였다. “얼마나 주고 그 집을 사셨습니까?” 여승진이 물으니 송계아 대답이 “천백만을 주었소” 한다. “아니 백만이면 충분할 집을 어떻게 천만이나 더주고 사셨습니까?” 하니 송계아 대답이 “백만은 집 값이고, 천만은 그대와 이웃하기 위한 값이요 (百萬買宅 千萬買隣)”했다. (출처: 南史 呂僧珍傳). 사실 좋은 이웃과 벗하여 살 수 있다면 어찌 천만금이 아깝겠는가?
3.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살아 보니까 돈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학문이 높은 사람이라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행복이란 뜻밖에도 평범하고 소소한 데에 있어서, 행복한 사람은 우리가 일상 보는 대로 안정된 가정에 좋은 친구와 함께하는 사람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고,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우기가 끝나서 그런지 내가 사는 실버타운인 로스모아(Rossmoor)에 찾아온 봄이 한 층 더 싱그럽다. 봄길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이웃에 마실을 간다. 이렇게 불쑥 찾아가도 즐겁게 맞아주는 이웃이 있고, 아무때나 부르면 나와서 만나주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친구와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가고, 바다가 손짓하면 바다로 간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 집에 돌아 오면 아내가 준비한 저녁을 먹고 사랑했던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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