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아주 추운 겨울 중 하나였던 11월 말, 이민 가방 네 개 반으로 보스턴 외곽 아파트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가구를 살 때까지 바닥에서 먹고 잤으며, 수저를 시작으로 모든 살림살이를 사들였다.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가장 먼 집이어서 처음 몇 주간은 매일같이, 나갈 때는 바퀴달린 빈 이민 가방을 끌고 나갔다가 들어와서는 가득찬 가방을 풀어냈다. 그리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아파트 천장에서 비가 샜다. 보스턴에서 지낸 8년여 동안 꼽아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기숙사, 아파트, 첫 집 등 이사를 일곱 번 했고, 캘리포니아에 와서도 지금 사는 집까지 이사를 네 번 했다. 지난 12년 동안 총 열 한 번의 이삿짐을 싸고 풀은 것이다. 마지막 이사를 한 지 만 4년이 지났으니 이젠 정착을 한 것 같지만, 사람일이 또 어찌 될지 모르니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
열 한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이삿짐을 효율적으로 싸는 우리만의 요령도 생겼었는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운반하기 좋게 상자 양쪽에 손잡이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이사 박스는 복사 용지 상자로 규격화하고 상자 바깥 두 군데 이상에 내용물을 적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없는 물건은 사지 않는 것이다. 이사를 자주 하면서 좋은 점은 살림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학생 때 늘릴 살림도 없었지만, 이사를 한 번 할 때마다 뭔가 조금이라도 처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사는 집에도 처음 들어올 때에는 꽤 단촐했는데, 살림이라는게 살면서 계속 쌓이기 시작하니 이젠 어디다 꽁꽁 잘 뒀는지 기억이 안나서 다시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규칙적인 운동을 안하면 군살이 생기는 것처럼 지난 4년간 내 살림에 생긴 살은 언제나 날씬해질지 내가 다 궁금하다. 일단 목표는 오래된 옷과 책장 가득 찬 책, 그리고 장난감 등을 정리하는 것이다. 지난주에 옷은 벌써 쓰레기 봉지로 두 봉지 이상 처분했다. 그리고 며칠 안에 책장을 정리하려고 한다. 여름이 되기 전에 장난감 정리가 다음이다. 얼마전 읽었던 곤도 마리에의 책에서, 집을 치우려면 하루에 방 하나씩을 잡아서 하면 안되고 모든 물건을 한번에 몽땅 완벽하게 치워야 한다고 한다. 마리에는 말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 선택의 역사를 정확히 말해준다. 정리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는 자신에 대한 '재고조사'이다”라고.
<황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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