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 저임 ‘쓰레기 일자리’ 전전
▶ 빈부격차·미래에 비관적
왜 많은 유권자들은 대통령후보 예비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사실 전국적인 판세로 보아 샌더스가 빌 클린턴을 꺾고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는 일단 대세론을 등에 업은 듯 보이지만 공화당 내부의 ‘흔들기’와 자질시비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낙마할지모르는 불안스런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권자들이 샌더스와 트럼프를 열렬히 응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앤의 스토리를 따라가 보면 2016년 대선에 유권자들이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조-앤은 14세에 대학에 입학한 신동이었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시티그룹에 입사, 모두가 부러워하는 일자리를 꿰찼다.
직장생활도 순조로웠다. 해외출장을 도맡아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조-앤은 공시서류 인쇄전문회사의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공시서류 인쇄회사란 연방증권 관련 법령에 따라 요구되는 증권신고서, 투자설명서, 위임장권유서, 정기보고서 당의 각종 공시서류들의 편집과 인쇄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중상층(upper middle class)으로 이동 중인 확실한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탄탄대로는 거기서 끝났다. 하이텍 거품이 터진데 이어 9.11 테러가 미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미국은 침체의 늪으로 떨어졌고 기업들은 다투어 구조조정에 나섰다.
2002년 조-앤은 인도인 대체 근로자들을 훈련시키라는 회사의 지시를 받았다. 그녀를 비롯한 미국인 직원들을 대체할 인력이었다.
레이오프를 당한 조-앤은 고임금 일자리를 찾기 위해 분투했지만 허사였다.
얼마 되지 않는 저축과 401(k) 퇴직연금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채 ‘빈손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그녀는 세간에서 말하는 ‘쓰레기 일자리’를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막다른 골목처럼 앞길이 꽉 막힌데다 급여 역시 쥐꼬리만한 직업을 미국인들은 흔히 쓰레기 일자리(crap job)라 부른다.
‘아메리칸 드림’이 거품처럼 터져버린 상태에서 40대 중반을 맞은 조-앤은 현재 조그만 금융회사에서 시급 11달러를 받으며 페이먼트 프로세싱 업무를 담당한다. 대학교육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직이다.
그녀의 스토리는 많은 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샌더스와 트럼프 등 ‘비주류’ ‘비전문’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조-앤의 예에서 보듯 경제적 파탄이라는 천길 낭떠러지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다는 ‘두려움’과 이렇듯 위태로운 처지로 내몰린데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다.
펜실베니아에 거주하는 조-앤은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민다”며 “많은 미국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오래 전에 끝장났다”고 주장했다.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있고 실업률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낮은 4.9%까지 떨어진데다 개스값까지 주저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2016년 대선의 최대 이슈로 주저 없이 경제를 꼽는다.
풀네임을 밝히길 거부한 조-앤은 “아이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 한다”며 “젊은이들은 대학에 들어가지 말고 해외 아웃소싱이 불가능한 플러밍과 같은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다.
그녀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미국이 직면한 문제의 일부라는 샌더스와 트럼프의 견해에 동의한다며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최근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상당수의 응답자들은 미국 경제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응답자들은 실직의 두려움을 털어놓았고, 몇 푼 안 되는 노후자금을 갉아먹는 건강문제, 제자리걸음을 계속하는 임금, 점차 어두워지는 자녀들의 미래 등을 걱정했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워렌 버펫은 사람들이 미국 경제에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로는 “오늘날 태어난 아기들은 미국사상 최고의 행운아”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대공황 당시에 그랬듯 단 한순간에 그들의 삶 전체가 정상궤도를 벗어나 진흙탕 속에 처박힐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다.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한 은행에서 매니저로 활동 중인 애쉴리 브링맨(28)은 “노동시장이 너무 터프하다보니 늘 실직의 두려움 속에서 생활한다”고 말했다.
브링맨 부부는 현재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지만 “알래스카의 에너지산업 붕괴로 대량해고가 이뤄지는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를 비롯한 모두가 고용상태 유지에 피 말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자녀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바라본다는 서베이 결과도 나왔다.
올해 실시된 CNN머니/E*트레이드 서베이에서 전체 참여자의 56%는 자녀들이 부모세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버라이존에서 테크니션으로 근무하는 리카르도 부스타멘테는 “덜 받고 더 하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며 최근에야 이 말이 “해고된 동료들의 일까지 추가 임금 없이 떠맡으라”는 뜻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 곧 43번째 생일을 맞는 부스타멘테는 “이러다가 이 나라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두 그룹으로 나뉘는 게 아닐까 염려스럽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8년째 임금이 동결됐는데 경비는 계속 늘어난다”며 “난 10년 된 차를 끌고 다니고 할인쿠폰을 모으는데 열심인 아내는 세일품목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가 지날수록 말 그대로 수입이 줄어든다”고 푸념한 부스타멘테는 “내가 일자리를 잃으면 우리 가족은 집을 잃는다”며 한숨을 내쉬며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대학과 건강보험 경비를 낮추겠다는 샌더스의 공약이 맘에 든다며 “그가 경선에 뛰어들어 민주당의 대선 유망주인 힐러리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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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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