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검진에서 5개의 종양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지 않은 것은 단지 귀찮음 혹은 암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사가 아마 악성종양이 아닐 것 같다고 한 말이 당연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가족력, 출산력, 모유수유 여부, 초경과 폐경 연령, 식습관, 생활습관, 체지방량 등이 유방암 발병인자로 관여하지만 이 모든 것에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특히 아이들 모두 모유로 키웠기에 유방암이 발병할 근거가 적다고 생각했다. 첫째 낳을 때만 해도 분유로 아이들을 키워야 더 건강하고 키도 큰다는 대대적 선전에 밀려 엄마들은 분유 먹이는 것을 선호했지만 나는 모유 수유를 고집했다.
하여간 나는 편한 마음으로 병원 생활을 시작했으나, 친정 엄마에게는 힘든 시간이었다. 괜찮다고 고집하는 딸을 힘으로 끌고 대학병원에 데려 와서 유방암 2기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곧바로 수술해 퇴원할 때까지 42일간을 엄마는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지난 시절이라 이렇게 담담히 말할 수 있지만 6차례 항암 주사를 맞으며 머리카락 다 빠지고 구토증세에 시달리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긴 하다. 지금은 약의 효능이 좋아져서 호전도 빠르지만 환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은 여전히 똑같지 않을까 싶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말을 되뇌이며 힘들고 아픈 시절을 잘 견딘 것 같다.
수술한 팔은 5 lb 이상 들지 말라고 하고, 설거지할 때는 꼭 고무장갑을 끼라고 교육받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지키기는 어려웠다. 수술 후 2년째 되던 해에 수술 한쪽 팔 전체가 붓기 시작했다. 림프 부종이 시작된 것이었다. 자기 전 손가락부터 어깨까지 매일 붕대를 감아야 했다. 매일 딸들이 돌아가면서 긴 붕대로 1-2년 감아주다가 어디서 알아왔는지 간단히 팔에 끼는 것을 사 주어서 지금까지도 그걸 사용한다. 지금은 10년간 먹었던 항암제를 졸업하고 어느 정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유방암과 함께 하면서 얻은 교훈 중의 하나는 언제나 평상심을 잃지 말고 기쁘게 사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방암 덕분에 난 산책하는 취미가 생겼다. 스트레스 줄이는 것이 모든 암 예방에 가장 중요한 건 맞는 듯하다.
<이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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