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감성을 휘젓는 행위다. 국민과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이성과 논리를 동원한 설득보다 감정적 호소인 경우가 훨씬 많다. 국민들 마음에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정서적 일체감을 형성하면서 정치는 외연을 확장해 간다. 감성을 외면한 정치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힘들고, 그래서 논리를 앞세우는 진보가 대부분의 선거에서 고전하는 것이다.
열정과 희망 등은 긍정적 감정이다. 하지만 정치가 항상 이런 긍정적 감정에만 기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증오와 적대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자극해 표를 얻거나 상대를 죽이려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근대사의 많은 비극들은 이런 부정적 감정을 교묘히 자극해 권력을 손에 쥐었던 세력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한국 정치판에서도 증오와 적대감 부추기기는 단골 메뉴다. 이와 함께 한국적인 방식으로 자주 활용되는 감정은 값싼 연민과 동정심이다. 총선을 목전에 둔 지난 주 대구에서 이른바 ‘진박 후보’들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조아리며 “민심을 외면한 일을 반성한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읍소했다.
새누리당의 이런 행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지방선거에서도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는 피켓을 앞세운 1인 호소 릴레이를 벌이고 멍석 위에서 비를 맞으며 큰 절을 올리는 등 유권자들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상당한 재미를 봤다.
툭하면 꿇어 앉아 표를 달라고 구걸하는 것은 ‘앵벌이 정치’에 다름 아니다. 이런 모습들은 기이하고 민망할 뿐 아니라 21세기 정치판 풍경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선진국들은 물론 후진국에도 이런 캠페인 행태는 없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무릎 꿇는 것이 일상화된 일본에서조차 정치인들이 표를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정치인이 유권자들 앞에 무릎 꿇어야할 만큼 정말 큰 잘못을 했다면 불출마나 은퇴 등 진정성 있게 책임지는 방식으로 속죄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후보들이 집단적으로 무릎을 꿇고 절하며 표를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은 가관이다. 완전 해외토픽감이다. 외국인들이 이런 광경을 보면 뭐라 말할까. 실제로 몇 년 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에 회부하면서 기자회견장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외신들은 무상급식보다 오 시장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오세훈은 카메라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까지 흘렸지만 서울시민들은 냉정한 판단을 했다.
진박 후보들이 집단으로 무릎을 꿇은 후 대구에서 고전하고 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새누리당의 오만함을 백배사죄 한다”며 멍석을 깔고 엎드려 절했다. 절은 진짜 백번이나 이어졌다. 여당 뿐 아니라 총선 직전 호남지역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역시 꿇어 앉아 사죄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 위한 고육지책이라지만 보는 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다. 정치인들이 유권자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인들이 이런 캠페인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먹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정서가 강한 곳에서 이런 수준 낮은 캠페인은 효과가 있다. 그래서 애용된다.
막장 공천극과 저질 캠페인으로 점철됐던 총선이 마침내 끝났다. 이번 총선에서 ‘앵벌이 정치’가 거둔 성적표를 차근차근 따져보면 한국정치의 수준이 드러날 것이다. 단지 “안 됐다”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무릎 꿇고 읍소했다고 당선시켜주는 정치에는 희망을 걸기 힘들다. 정말 불쌍한 건 후보들이 아니라 이런 후보들을 뽑아주는 민도와 한국정치의 수준이다. 동정심은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게나 베풀고 정치인들에게는 값싼 연민 대신 아주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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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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