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종목 불문, 국가 불문하고 두루 살펴보는 편인데 최근 한국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부진에 관한 뉴스들이 계속해 들려온다. 당초 우승전력으로 평가되던 한화는 최하위권으로 처져있다. 특히 한화의 부진은 야구에 관한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서 ‘야신’이란 별명이 붙은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기에 더욱 의외다.
그러나 야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김성근 감독이 지난해 한화에 부임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현재의 난국을 예견했다. 김성근 스타일의 야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성장한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율성을 주기보다 철저하게 자신의 생각에 따라 관리하는 야구를 펼친다.
승리를 위해서라며 선수들의 역할분담을 무시하기 일쑤다. 투수들은 전원이 선발이고 전원이 불펜이다. 부진한 선수들에게는 고교생들에게나 시킬만한 특훈을 강요한다. 프로팀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프로선수들에게 성적은 곧 자신의 몸값과 직결된다. 따라서 스스로 책임지고 땀을 흘리는 게 기본이다. 그런 프로선수들을 마치 아마추어 다루듯 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그리고 단기 시리즈가 아닌, 팀당 144경기(한국 프로야구)를 치러야 하는 시즌을 이런 방식으로 소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 감독은 그동안 맡는 팀마다 성적을 크게 향상시켰다. 특히 2007년과 2008년에는 SK 와이번스를 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화는 ‘김성근 매직’을 기대하며 한동안 프로야구를 떠나있던 노감독을 지난해 영입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빗나가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에 태어나고 성장한 선수들에게는 김성근식 야구가 어느 정도 먹힐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림없다. 프로야구 시스템 자체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선수들 의식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 패러다임이 과거에는 잘 작동하고 효과를 거두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낡은 것이 돼 버렸다. 그런데도 그것을 고집함으로써 팀의 난맥상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바뀌는 환경에 패러다임을 맞추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자연과 인간사회 불변의 진리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확인되는 곳이 비즈니스계다. 지난 10여년 사이에 전 세계를 호령하던 글로벌 기업들이 줄줄이 몰락했다. 노키아, 코닥, 소니, 모토롤라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초우량 기업들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탐 피터스가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고 했을 정도다.
이런 대기업들 대부분이 자신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스스로의 성공에 도취해 있다가 외부 변화에 대응하는 패러다임 전환에 실패한 것이다. 이른바 ‘성공 증후군’이라는 덫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빠진 것도 이것이다.
낡은 패러다임과 성공 증후군의 덫을 실감나게 확인시켜준 또 하나의 사례는 이번 4.13 총선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후 자기 아버지 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을 복원하는 일에 집중했다. 국정교과서의 부활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는 듯 했다.
대통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빨간 옷을 입은 채 격전지를 돌아다니며 국회를 심판해 달라고 했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이렇게 하면 콘크리트 지지층들이 결집해 대통령을 도왔다. 하지만 몇 번의 성공기억으로 형성된 대통령의 지나친 ‘경로(path)의존성’에 국민들은 “정신 차리시라”는 질책으로 응답했다.
그러고 보면 ‘김성근의 야구’와 ‘박근혜의 정치’는 너무도 닮아 있다. 자신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이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연 이번에 드러난 민의는 대통령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까. 회의적이긴 하지만 일단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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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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