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티켓 없는 추태로 ‘나라 망신’ 여전
▶ 해외여행객 2000만 시대 ‘눈앞’, 에티켓은 ‘글쎄?’
해외여행객 연간 2000만명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경제력 향상과 저가 항공사의 발달, 해외여행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인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연간 출국자 수는 2012년 1373만명, 2013년 1484만명, 2014년 1608만명, 지난해 1931만명을 기록했다. 해외여행객 2000만명 고지를 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는 평이다. 특히 50~60대의 중장년층과 70~80대의 노년층들까지 해외여행 열풍에 합류하면서 해외여행객 증가에 탄력이 붙었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해외여행객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여행객들이 외국에서 몰상식한 행동을 해 여전히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 말라는 건 다 한다” 추태 도 넘어
경기도에 살고 있는 대학생 조모(26)씨는 지난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낯 뜨거운 경험을 했다. 유럽 곳곳에서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한국 중장년층의 단체 여행객들 때문이었다. 가장 부끄러웠던 일은 바티칸 박물관에서 벌어졌다.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바티칸 박물관의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50대 한국인 여성으로 이루어진 단체 관광객들이 큰 소리로 떠들며 사진촬영을 한 것이다. 보다 못한 박물관 관계자가 이를 제지하며 “silence!(조용히)”라고 외쳤다. 이에 한 중년 여성은 한국말로 예배당이 떠나가라 “왜!”하고 맞받아쳤다. 그곳에 있던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수군거렸다.
조씨는 “한달 간 유럽을 여행하며 그런 유(類)의 50~70대 한국인 관광객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삼삼오오 모여 큰 소리로 떠들거나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을 해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제 얼굴 깎아먹는 행동은 외국에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며 “다른 여행객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행동을 삼가길 바란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불편을 겪는 건 다른 관광객뿐만이 아니었다. 현지 내국인들도 몇몇 한국인 여행객들로 인해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했다.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대학생 가마다 요코(22ㆍ여)씨는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한국인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일본은 흡연구역이 철저히 정해져 있고 길바닥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하면서 “그런데 몇몇 한국인 남성들이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바닥에 침을 뱉는다. 이 바람에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해외에는 한국인 출입을 금지하는 식당, 술집 등의 업소들도 있다. 가게 내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지나치게 시끄럽게 하는 등의 매너 없는 행동이 지속되자 내린 조치다. 일본에는 아예 일본어가 아닌 한글로 쓴 ‘사진을 찍지 말아주세요’ ‘죄송하지만 한국인은 출입이 금지됩니다’라는 문구를 붙인 곳도 있다. 유럽 각국에서도 한국인을 받지 않는다며 ‘no Korean allowed(한국인 출입 금지)’라는 푯말을 걸어 둔 가게들이 등장했다.
영국에서 2년째 살고 있는 유학생 신모(24)씨는 “외국 관광객들에 비해 한국인 관광객들의 글로벌 에티켓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하면서 “중국인들의 무(無) 매너를 욕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요관광지, 특히 박물관이나 성당같이 조용한 곳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은 중국인, 한국인밖에 없다”면서 “해외 여행객이 많아지는 만큼 그에 걸맞은 에티켓을 배운 후 여행을 갔으면 한다”고 했다.
▲비행기ㆍ호텔에서도… 갑질 버릇 고쳐야
이같은 매너논란이 나올 때마다 여행 전 가이드들이 단체 여행객들에게 주의할 점을 충분히 숙지시키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여행사 측은 10명 이상의 여행객들을 일일이 다 챙기는 것은 힘들다고 항변한다.
국내의 한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직원 A씨는 “아무리 여행 전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등을 교육해도 한 귀로 흘려버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면서 “갑자기 일탈행동을 해버리니 가이드들도 사후에 저지하는 것 말고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여행객들이 가이드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일부이긴 하지만 몇몇 여행객들, 특히 50~60대 이상의 여행객들이 가이드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잘못된 행동을 지적받았을 때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토로했다.
여행지에 발이 닿기도 전, 비행기 내에서 소란을 피우는 관광객들도 문제가 되고 있다. 외항사인 B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여)씨는 기내 소동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후 일명 ‘진상’ 한국인 승객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추태를 부리는 승객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씨는 “승무원들에게 술을 더 달라고 떼를 쓰거나 욕설, 반말을 하는 승객들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승무원들을 하대하는 승객들과 마주하는 것보다 더 고역은 없다”고 했다.
기내에서의 ‘글로벌 갑질’은 자주 일어난다. 지난달 16일에는 부산에서 출발해 괌으로 향하던 항공기에서 한국인 치과의사가 술에 취해 담배를 피우고 행패를 부리다가 미국연방경찰(FBI)에 검거됐고, 3월에는 하와이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 내에서 70대 노인이 “요가를 하겠다”며 난동을 부려 회항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호텔에서도 어글리 코리안들이 기승을 부리는 건 매한가지다. 지난해 한 동남아 국가에서 연수를 한 이모(26ㆍ여)씨는 3개월 간 해당 국가의 호텔에서 지내면서 천태만상의 한국인 관광객들을 봤다고 했다. 이씨는 가장 꼴불견인 것으로 50~60대 남성들의 불륜을 꼽았다. 이씨는 “호텔의 카페에서 20대 여성 여러 명을 앉혀 놓고 나이든 남성들이 돈을 자랑하며 ‘오빠’라고 부르게 시키는 것을 보고는 경악했다”면서 “그 뒤 아무렇지 않게 한국에 있는 부인과 통화하는 것을 보며 얼굴이 뜨거워졌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씨는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 남성들이 동남아 국가에 관광을 왔다가, 혹은 사업차 왔다가 현지에서 아이를 만들고 책임지지 않고 도망가는 행태 때문에 한국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실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돈 자랑’을 하며 거만하게 구는 한국인들도 한국의 이미지를 깎아먹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여행사 직원 A씨는 “졸부행세를 하며 현지인 위에 군림하는 듯한 행동을 해 가뜩이나 자존심과 자부심이 큰 동남아 현지인들을 자극한다”면서 “자칫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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