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늘 그랬듯이 아침에 등교해 학생들이 없는 텅 빈 교실에 들어간다. 텅 빈 교실, 지난 20년간 매일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이 텅 빈 교실이지만 난 늘 매일 낯설고 설렌다. 아마도 연극을 시작하기 전 빈 무대에 서 있는 연극배우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오늘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주제를 되새겨본다. 늘 이럴 때면 학생들의 각기 다른 반응도 함께 머릿속에 떠올라 텅 빈 교실에서 혼자 배시시 웃게 된다. 아침 시작종이 울린다.
부리나케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운동장으로 난 향한다. Hi, Mrs. Nam! 하며 해맑은 미소로 아이들이 다가온다. 손에 엄마가 사다준 화분을 들고, 혹은 뒷마당에서 꺾은 꽃들을 들고 학생들이 내게 다가온다.
아, 잊고 있었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었지. 한국처럼 똑같은 날에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마다 날짜가 바뀌어서 막상 5월이 되면 잊어버리게 되는 미국의 스승의 날. 화려하진 않아도 뒷마당에서 꺾어온 꽃 몇송이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한 학생의 Acrostic Poem 한줄에 마음이 밝아진다. Mrs. Nam, you are… Magnificent, Respectful, Super, Nice, Awesome, Meaningful! 훗,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고 그 생각을 이런 형식으로 표현한 그 순수한 노력이 너무 예쁘다.
일년에 가르치는 180일 중에 3분의 2는 늘 후회로 가득하다. 부족한 부분을 좀더 봐줘야 했었는데, 갑자기 바뀐 집안 환경 때문에 그렇게 말썽피웠는데 내가 몰라줬구나 등등의 후회하는 날이 보람을 느끼는 날보다 더 많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발전이 보이지 않아 답답해 하는 날이 셀 수도 없다.
그래도 한조각 희망은 그렇게 후회로 다음 학년에 보낸 학생들이 몇년 뒤에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발전된 모습으로 말이다. 아마 교사란 직업은 그 짧은 한순간의 희열을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온 소중한 꽃과 글에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과연 난 그럴 만한 자격이 되는 선생님인지 말이다. 적어도 내 학생들에겐 난 노력하는 선생님으로 그들 기억에 남고 싶다. 오늘 방과후의 텅 빈 교실은 한아름 꽃내음으로 가득하다.
<
남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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