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이곳 베이지역에 이용수 할머니께서 다녀가셨다. 운이 좋게도 할머니께서 내가 다니는 성당에 방문하셔서 그녀를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다.
마이크 혼다라는 하원의원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셨다고 한다. 그가 일본계임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위안부(이 표현이 적절치 않고 성노예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보편적인 이해를 위해 위안부라 사용) 문제를 최초로 접한 것은 90년대 초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를 통해서다.
그리고 95년 대학 입학 후 학교 강당에서 “낮은 목소리로”라는 영화를 통해 할머니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신 후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영화 제목처럼 “낮은 목소리”였고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 우리는 미국땅에서 위안부 문제를 역사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는 서명운동도 했고, 하원의원의 초청으로 할머니가 미국에 오시고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영화 “귀향”이 미국에서도 상영되고 있다.
아직은 미흡할 수도 있지만 할머니들 스스로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일부 국민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를 뵌 날, 할머니는 오렌지색의 화려한 개량한복을 입고 계셨다.
몸은 불편해 보이셨지만 너무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서셨다. 조국과 아픔을 함께 하셨고 전쟁이라는 인류의 잔혹한 범죄 속에서 벌어진 악행을 세계에 알리시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대학에 막 입학해 수업시간에 “환향녀”라는 단어를 배웠다. 누군가 잘못 사용하는 “화냥년”이라는 욕설이 바로 “환향녀(고향으로 돌아온 여자)”에서 온 것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로 끌려간 일부 여자들이 운 좋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은 자결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집안을 더렵혔다며 욕을 먹고 죽음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또 다시 죽음으로 내몰렸듯이, 우리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같은 일을 당하시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귀기울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들은 식민지 조선의, 아마도 가난한 집의 여자, 어린 소녀였다. 가장 보호가 필요한 약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조용히 덮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영화가 나오고 영화제에서 상도 받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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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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