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난 스페인 땅에 발을 디딘지 이틀만에 이곳의 공기에 감염되어 버렸다. 오래된 건물들, 각기 다른 모양의 발코니들과 문들, 특히 건물들의 문짝에 흠뻑 빠졌는데 사람 키의 두배는 될성싶은 나무와 무쇠로 장식된 문짝들의 그 고풍스러움에 완전히 매료되어 길을 걸을 때조차 건물들의 발코니, 지붕 끝단에 조각된 문양들, 문짝들을 보며 가느라 몇번씩 발을 헛짚기도 하는 것이다.
대성당, 뾰족뾰족한 지붕 위 첨탑이 인상적인 성당 내부에 들어서자 높이 천장에서 아치를 이루며 바닥으로 줄달음치는 돌 기둥들과 아치의 우아한 곡선과 곡선을 채우며 이어지는 테라코타 벽돌의 푸근한 색감이 성당 전체를 차분하고도 엄숙하게 감싸고 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다시한번 울컥거림에 잠시 눈을 감는다. 대체 이 울컥거림은 무어란말인가.
거리거리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건물들의 벽면조각이나 지붕들, 발코니, 첨탑들을 볼 때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에서 내내, 또 대성당 문을 들어선 순간, 울음이 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탄성처럼 터져나올 것같은 이 알수 없는 증세를 겪는다.
대성당 뒷 건물과 건물 사이 작은 광장에 스페니쉬 기타 선율이 울려퍼진다. 고성당의 오랜 향기에 더해 기타 선율이 가슴에 메아리치자 모든걸 그만두고 그저 이 자리에 앉아 넋을 놓고 이 분위기에 취하고만 싶다. CD 한 장을 산다. 햇빛은 이 안뜰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관광객들은 벽에 기대어 서거나 바닥에 앉아 기타 선율에 귀 기울인다.
라 람블라 거리를 따라 사람들 틈에 끼어 이리저리로 밀려 떠다닌다. 시장통에 앉아 해물을 먹고 타파스와 상그리아, 와인 그리고 진한 커피, 날 매료시키는 이 모든 것들이 골목마다 넘쳐난다.
거리는 활기에 가득차있고 그럼에도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들과 그 건물들을 껴안고 구불구불 끊어질듯 이어지는 골목들, 그리고 시간이 덕지덕지 묻은 돌 바닥들, 이 모든 것들에서 우러나오는 기품있는 공기 속에 바르셀로나는 온통 빠져있다. 커다란 구엘 공원이나 성당이나 그렇게 많은 인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파킹장이라든지 호텔이라든지 미국땅의 대부분에서 볼수 있는 위락단지와 연계된 상업단지들이 여기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게도 많은 관광객들에도 불구하고 공원 옆에는 아파트나 일반주택들이 빼곡히 같이 자리하고 있고 타파스를 파는 바들은 그러한 관광지나 일반 주택지나 어딜가도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어 늦은 저녁시간이면 사람들로 꽉찬 가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거리가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마드리드 가는 길, 어깨의 배낭 때문이기도 했지만 스페인의 속살이 보고싶어 차를 빌려타고 마드리드로 향해 더듬어 간다. 도로변 마을들을 지날 때마다 스페인 특유의 색과 건축양식에 반한다.
벽돌색, 황토빛의 은은한 색과 질감의 벽들, 그리고 붉은 기와, 마치 오랜 성곽같은 와이너리들, 무너져 내려 버려진 폐허조차 아직 그 품위를 지니고 있는 풍광들,주변의 밭과 작은 나무들과 나즈막한 구릉들이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강렬한 스페인의 햇빛 아래 서로 어우러져 더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칠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토한다.
엊그제 대성당 작은 안뜰에서 샀던 CD를 튼다. 스페니쉬 기타음악과 도로 양변으로 계속 흘러가는 마을들과 낮은 산, 구릉들, 포도밭, 세월의 잔해같은 건물들, 벽돌빛 지붕들, 흙 빛깔 모든 것에 인간 본연의 향수같은 느낌이 파도친다. 바람은 너른 초록 들판과 둔덕 위 부서진 하얀 벽돌담 위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저편 하늘로 사라진다.
흰색 풀꽃들이 한들거리고 하늘은 더할 수없이 투명하고 몇점의 구름이 하릴없이 노닌다. 차 안에는 알함브라의 궁전이 울려 퍼지고 나는 이 순간 더없이 행복하다. 무엇이 모자라다 할 것인가. 수 없는 모자람에도 이러한 순간이 있어 삶은 넘치도록 충만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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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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