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가 낯설 때가 있다. 사람을 만날수록 관계의 나이테는 굵직해지는데 땅속 깊이 지탱하고 있는 뿌리는 흔들릴 때이다. 상황에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이 어려워진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뒷걸음쳐서 안전망 속에 몸을 감춘다. 숨고 싶은 것이다. 굳게 닫힌 방안은 족쇄 없는 감옥처럼 보이지만 혼자 있는 그 곳이 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자꾸만 창틀 너머 비치는 달빛을 올려다본다. 외로운 것이다.
얼마 전, 대기업 임원면접을 마친 다음 날 7개의 계열사가 모여 미래 지속가능한 신사업에 대해 소개하는 테크노 컨퍼런스에 초청되어 다녀왔다. 면접은 끝났지만 해외시장 조사와 국내 적용 가능한 비즈니스를 분석한 두툼한 자료들은 여전히 내 손에서 떠나질 못한다.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컸고, 웃어야 하는데 입만 뻥긋, 눈은 질끈 감는다. 약 12시간 진행된 컨퍼런스에선 웃는 모습마저 평가된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했다. 역량을 다 보여주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 속에서 직급만큼이나 다양한 사람을 만났기에 몸과 마음이 방전되었다.
행사를 마친 뒤, 사람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방에서 컴퓨터 하는 시간이 늘었다.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콘텐츠가 인터넷을 가득 채운걸 보니 혼자가 편하다고 하면서도 허전함을 느끼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가 보다. “열정에 기름 붓기”와 비슷한 종류의 글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이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니까. 그러다 문득 스크린 너머로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쌍방향 교감이 아닌 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폐쇄적 소통을 하고 있는 얼굴 없는 우리들.“인생 공부”,“내쉬다(내가 쉬는 다락방)” 여러 콘텐츠를 통해 위로와 자극을 받으며 마음은 따뜻해지지만, 결국 교류가 아닌 혼자만의 고립으로 남는다. 일본 정신과 의사인 ‘오카다 다카시’는 현대인이 겪는 고립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 알레르기(Human Allergies)’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무해한 ‘꽃가루’‘음식’등을 해로운 것으로 인식해 몸에서 심한 거부반응이 나타나듯, 불편한 상황을 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식해 심리적으로 거부하는 증상을 뜻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행사를 마친 다음 날, 여전히 몸과 마음은 닫혔지만 여느 때와 같이 봉사 활동을 갔다. 수영장 풀 속에서 한 시간 넘게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안고서 치료를 위한 활동들을 했다. 몸이 더 지칠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점점 더 가벼워졌다. 방 안에 틀어박혀 혼자 아픈 마음을 삭이며 있었는데 아이들과 어울리자 신기하게 그 마음이 스스로 회복이 되었다.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물질을 계속해서 신체에 주입하며 면역력을 키우는 것처럼 고립을 치료하는 방법은 사람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이다. 복잡한 관계와 상황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장소와 맞는 역할을 통해서. 도전하는 횟수만큼이나 좌절하는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지금도 혼자 겁에 질려 숨었다가, 아무도 날 찾아주지 않을 때, 스스로 걸어 나오는 걸 무한히 반복하는 혼자 하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그런 때면 ‘못 찾겠다. 꾀꼬리. 이젠 내가 술래~’를 속으로 부르며 내가 나를 찾아내는 술래가 된다. 친절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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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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