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날씨는 딱 한국 같았다. 공항문이 열리고 바깥 공기가 안으로 쓸려 들어올 때, 서늘한 밤공기가 신기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택시기사를 기다리기 위해 기품있게 앉아있는 하얀 머리카락의 할머니 옆에 앉았다. 그분은 잠시 앉아 있을 그곳이 아주 편해보였다 -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수한 꽃처럼. 곧 손자, 손녀로 보이는 작은 아이들이 게이트에서 나와 달려 오더니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아주 아름답게,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깊이 안았다. 이스라엘의 첫인상은 그날 본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어린아이들을 안으며 더 빛나는 꽃이 될 때 그녀에게서 우리네 할머니를 본 것만도 같았다.
끊임없는 전쟁과 약탈 속에서 우리의 할머니들은 터전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생존을 위협하는 힘 앞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올곧은 방식으로 당신은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내 터전은 빼앗을 수 없소. 나는 쫓겨도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갈 것이오. 그리고 내 손주들를 돌보며 삶을 이어갈 것이오”라고 외치면서 가족과 터전을 위해 기둥이자 생존의 토양이 되었다. 먼지가 나는 흙길을 걸어가는 다부진 나의 조상의 뒷모습은 무거운 삶을 끈질기게 버텨왔듯 굽었고, 먹먹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터전에서 나는 컸고 당신의 뒷모습이 나의 정신과 뿌리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그 할머니가 나의 조상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 민족은 분명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크고 작은 전쟁을 겪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존하여 후대를 지키기 위한 조상들의 굳건하고도 한맺힌 모습은 국가의 외교적 정책과는 무관하게 나타나는 민족적 자취이다. 역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계속되는 사투를 벌인 한국과 이스라엘은 아주 비슷한 조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의적으로 혹은 자의적으로 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디아스포라(diaspora: dia –흩어진, spora-씨앗)라고 한다. 유대인과 한국인은 대표적인 디아스포라의 민족이다. 한국인의 경우 국권침탈, 일제의 억압이나 한국전쟁 등의 이유로 원래의 터전을 떠나 전세계에 흩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흩어져 뿌려진 씨앗은 풀이 되었고 꽃이 되었다. 어느새 나 자신이 디아스포라가 되어 처음 방문하게 된 이스라엘에서 다르지만 너무나 비슷한 민족의 모습을 보니 새삼 할머니의 굽은 등이 생각난다. 발에서 단단한 뿌리가 돋아 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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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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