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 데이 연휴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는 시기다. 올해는 경기 회복에다 낮은 기름 값 덕으로 2008년 대불황 이래 가장 많은 미국인이 여행을 떠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올 여름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가는 미국인들은 집을 나서면서부터 빈부 격차가 주는 차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비행기 좌석이 1등석과 이코노미로 나뉜 지는 오래 됐지만 이제는 이코노미라도 이코노미 플러스니 엘리트니 하는 이름을 붙여 돈을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좌석의 크기는 물론 음식의 종류, 부치는 짐의 개수, 기내 와이파이 이용 가능 여부 등도 차이가 난다.
이런 차별은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시작된다. 교통 안전국(TSA)은 승객의 범죄 경력 등을 사전에 조사해 간단한 검색만으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프리첵(Pre-Check)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도 돈이 있는 사람은 복잡한 사전 인터뷰 등을 거치지 않고 프리첵 티킷을 따로 살 수 있다. 보안 검색대의 긴 줄로 30분 이상 기다리다 비행기를 놓친 승객들이 프리첵을 통해 순식간에 검색을 마친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이 고울 수 없다.
디즈니랜드 등 유명 테마 공원에 가도 돈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별은 계속된다. 전에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줄 서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퀵 패스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급행료를 내면 기다리지 않고 라이드를 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웬만한 데는 다 마련돼 있다.
하기는 꼭 놀러 가야만 빈부격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 다우존스 산업 지수는 지금 1만7,000선으로 대불황 이전 최고치였던 2007년의 1만4,000을 넘어섰고 주요 도시의 집값도 상당 부분 회복했다. 그러나 같은 도시라도 고급 주택가는 큰 폭으로 오른 반면 저소득층 지역은 상승세가 느리다. 부자가 주로 회복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무엇보다 미국인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산층의 가구당 중간 소득은 5만4,000달러로 금융 위기 발발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직도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통계로는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대다수 미국인이 이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거기다 지난 3일 발표된 고용 지표는 5월 한 달간 창출된 일자리가 3만8,000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년 간 미국 경제는 월 평균 2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왔다. 전문가들의 예상과 크게 어긋나는 이 수치로 인해 6월로 예정돼 있던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의 금리 인상은 물 건너갔으며 7년 간 계속돼 온 경기 회복은 끝나고 불황이 다시 찾아올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5월 실업률은 4.7%로 전달의 5%에 비해 낮아졌지만 이는 일자리 증가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다 지쳐 아예 취직을 단념한 노동 포기 인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노동 참여 비율은 대불황 이전 66%에서 2016년 현재 62%로 감소했다.
올 대선에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70이 넘은 버몬트 출신 사회주의자가 선전하고 있는 것이 이런 경제 현실과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멕시코 밀입국자와 중국의 불공정 무역 때문에 미국 경제가 이 모양이 됐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지만 오랜 실업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백인 중하류 층에 먹혀들고 있다.
전국민 무료 의료 보험과 공립대학 무료 등록금 등을 내건 버니 샌더스의 주장은 공화당은 물론 힐러리 클린턴 측으로부터도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높은 학비와 힘든 취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젊은이들은 이에 열광하고 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미국 경제는 지난 7년간 더디지만 꾸준한 회복세를 보여 왔다. 그런데도 미국의 분위기가 이 지경인데 다시 침체에 빠져든다면 허덕거리고 있는 많은 미국인들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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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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