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빅터그루언, 샤핑몰의 발명가(상)
▶ 건축가 빅터 그루언, 새로운 상가의 개념 발명…1956년 최초의 샤핑몰 ‘사우스데일 센터’ 개점, 샤핑몰 소문 세계로 퍼져

최초의 샤핑몰이라고 여겨지는 사우스데일 센터의 최근 모습. 60년 전인 1956년에 지어졌고 이 건물의 소문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갔다. 비공식이지만 이 건물 덕에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상업공간을 설계한 사람은 그루언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샤핑몰이라고 하면 인터넷 상점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원래는 미국에서처럼 오프라인 상점의 한 종류를 의미하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일반 오프라인 상점보다 좀 더 편리한 쪽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샤핑몰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없던 단어로 1950년대에 태어난 어휘이다. 이때 생겨난 샤핑몰은 기존의 상가의 단점을 극복해서 새로운 상가의 개념을 발명하여 생겨난 것이다. 이 개념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던 빅터 그루언(Victor D. Gruen)이라는 건축가의 머리에서 창조되었다.
여기서 잠깐. 보통은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해야 하는데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하지 않고‘ 발명’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만큼 그의 디자인의 파급효과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루언은 190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나 비엔나 예술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출생년도가 10여년 차이나는 것을 제외하면 쉰들러와 노이트라의 경우와 비슷하다. 모두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했고 건축공부 후 미국으로 건너와 건축 활동을 했다. 다른 점이라면 앞의 두 사람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건축을배우기 위해 왔고 그루언은 난리 통에 피난처로 택한 곳이 미국이었다.
그루언은 건축 활동 말고 사회주의에 심취하여 1926년부터 1934년까지 정치풍자 극단을 운영했었다. 그의이런 사회주의적 배경은 평생 사람을 위한 건축과 도시를 설계해 가는 밑바탕이 된다. 그는 건축 실무를 익히기 위해 독일로 가서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 밑에서 일을 했다. 이 곳은 당시 르 꼬르뷔제(Le Corbusier)를 비롯한 신진 유명 건축가들이 한 번쯤은 거쳐 갔던 당대 세계 최고의 건축설계 사무소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이 30인 1933년에 자신의 이름으로 설계사무소를 열었다. 주로 상업건축을 설계했다.
그루언이 사무소를 연지 5년이 지난 1938년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세계 제2차대전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루언은 합병되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지인으로부터 당장 유대인 탄압이 시작될 것이라는 비밀 정보를 듣게 되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바로 그날 밤 아무런 준비 없이 야반도주해야 했다. 만약 늦었다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본 일을 당했을 것이다. 그는 무작정 미국 뉴욕을 향했다. 이때만 해도 아직 대서양 사이에 여객기가 운행되지 않던 시기였다. 비엔나를 출발하여 유럽의 여러도시를 거치고 여객선으로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의 수중에는 단돈 8달러와 그의 건축대학 졸업장 뿐이었다. 초라했다.
게다가 그루언은 키 작고 땅딸한 체구였고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건 아주 기초적인 어휘 뿐이었다고 한다.
정말 암울한 상황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하늘이 도우셨는지 다행히도 우선 제도공으로 건축 설계사무소에 취직할 수 있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곳 역시 상업건축을 주로 설계하던 곳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몇 년후 동료와 독립하여 함께 설계 사무소를 열었다. 그들은 건축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이 시절에도 그는 비엔나에서 온 사람들과 극단을 만들고 짬짬이 연습하여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에 2차례나 작품을 선보였다.
그루언도 쉰들러와 노이트라처럼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왔다. 그렇다고 그들과 같이 일을 하려고 온 것은아니다. 이것은 그들 모두가 같은 고향 사람인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 태평양 연안을 따라 여러 개의 백화점을 구상하고 있던 한 건축주의 제의에 따라 전격적으로 옮겨 왔다. 여기서도 그가설계한 건물은 사람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았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건축주들의 호응이 좋았다는 것은전국 각지에서 건축주가 찾아 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의미한다. 그리고 마침내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는 기념비적인 건물을 설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교외에 현재의 샤핑몰 형태와 비슷한 건물 단지를 설계하여 1954년에 문을 열었다.
노스랜드 센터(Northland Center)인데 거대한 대지에 주변은 자동차 주차장으로 두르고 대지 중심에 여러 개의독립된 상가를 한 곳에 모아 놓은 후 보행자 전용 공간으로 연결했다. 대지 경계를 따라서는 아무 건물도 짓지 않고 비워 두었다. 샤핑몰이라고 하면 대개 실내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복도가 외부로 개방이 된 것이 큰차이다. 이 건물 역시 다른 그루언의 건물처럼 호응이 좋았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발전시켜 미네소타의 미네아폴리스 인근에 사우스데일 센터(Southdale Center)를짓는데 이것이 최초의 샤핑몰로 여겨지는 건물이다. 1956년에 개점했고 규모는 79만7,000스퀘어피트로 최근에 지어진 것들에 비하면 그다지 크지도 않고 별로 특이해 보이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거대한 건물을 지어 밖에 나가지 않고 안전하고 쾌적한 실내에서 산책하면서 샤핑을 할 수 있게 설계했다. 이 건물에 대한 소문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갔다.

사우스데일 센터가 지어지기 전에 지어졌던 노스랜드 센터. 이 건물을 발전시켜 사우스데일 센터가 탄생한다. 두 건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기에는 건물이 독립되어 떨어져 있고 건물들이 외부 보행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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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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