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어딜가도 만나는 대성당의 웅장함과 그 예술성에 지치도록 감탄하건만 Toledo 대성당에선 엘 그레코의 천장화에 압도당한다.
넓은 홀을 메우고 구경하느라 서성이는 많은 사람들 머리 위로 금새라도 그림 속 사람들이 홀 바닥으로 떨어질 듯 생생하고 그림 속 천사들이 내려와 말을 걸기라도 할 듯하다.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만난다. 장사진을 친 사람들 뒤에서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발돋움을 해가며 힘들게 이 세계적인 작품과 대면한다. 생략, 뒤틀림, 극심한 분해, 해체에 의해 빼앗긴 시선으로 인해 가슴이 머뭇거린다. 아직도 큐비즘에 적응이 안되는 이유는 무얼까.
오히려 초현실 주의의 그 것에는 시선보다 가슴이 자연스레 반응한다. 가슴이 먼저 다가가 같이 동조하여 느낀다. 가슴으로 말 하는 것, 거기엔 필연적인 생략과 뒤틀림과 해체가 있다. 큐비즘에선 난 아직 자연스럽지 못하다.
스페인 북부, Bilbao의 구겐하임 미술관, Richard Serra의 작품 앞에서 무릎 꿇고 목놓아 울고싶어진다. 내가 그토록 보고싶어 했던 작품 앞에 서있는 것이다. 여기 이 작품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야말로 기적처럼 그의 작품, 그 중에서도 내게 늘 영감을 주곤했던 철 조형물들이 프랑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한 덩어리를 이룬 듯 커다란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작품 안으로 들어가 또 다른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구겐하임은 외부, 내부의 벽 하나하나, 구조물 하나하나의 선과 흐름을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실현한 건축물이다. 세라의 철 조형물 역시 프레임 없는 구조물로 사람이 사이사이로 걸어 들어가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휘어 돌아가는 선의 그 미려함, 고고한 기품과 그 선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적막, 비어있음, 그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만난다.
대가들의 작품 앞에서 지나온 나의 생을 되돌아 본다. 이 작품들처럼 이제껏 죽을 힘을 다해 성취하려 했던 것이 있었던가. 죽을 힘을 다한다면, 다했다면 이루었을, 내가 놓쳤던 그 무언가가 있었을까.
기고만장했던, 그래서 너무 쉽고 나태하게 보내버렸던 시간들이 가슴 쓰리게 안타깝다. 왜 더 고집스럽게 파고들지 못했을까. 왜 부수적인 것들에 매달려 진정으로 잡아야할 것들을 놓아버렸을까.
회한에 가득차 빌바오 시를 관통하며 너르게 품을 벌려 휘돌아 가는 빌바오 강을 내려다 본다. 루벤스, 고야, 엘 그레코, 피카소, 와홀, 세라 등등 머릿 속을 어지럽히는 것은 그들의 위대함보다 오만하게 살아온 내 생에 대한 참회와 그들의 예술에 대한 경외와 그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내 작품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 내 작고 볼품없는 생에 대한 아주 작은 자부심이 흔들리는 촛불처럼 저 안에서 내 생을 밝히고 있음을 발견한다. 작품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일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때에 작품보다 더 지키고 싶은 걸 지켜왔던 자부심일 것이다.
순수한 즐거움으로 시작했지만 작품이 단지 내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끝내 전락하였을 때 난 그걸 참을수 없었다. 왜 더이상 즐겁지 않은지, 왜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 또 왜 그걸 참아가며 버텨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고 그보다는 더 시급하고 현실적인 눈 앞의 일들에 몰두해야만 했었다.
나는 단지 살고자 하였다. 모든 걸 버리지 못해 끝내 가지못한 그 길을 멀치감치 떨어져 바라다본다. 삶이란 어느 길을 가든 진심을 다 한다면 결국 한 곳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던가. 처음 발을 내디뎠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걸어왔다해도 도달할 곳은 하나이리라. 이리저리 다른 등산로를 택해 산을 오르지만 단 하나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처럼.
빌바오를 떠날 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바닷가 길로 들어서자 빌바오 강이 제 몸을 버리고 바다가 된다. 회색 바다가 끝없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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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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