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많이 했고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가끔 외로웠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날 왁자지껄한 전화기 너머 들리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멎으면 나는 여기 이렇게 혼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일을 하고 드문드문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시간이 꽤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내내 관찰자였다. 미국문화를 관찰했지 그것과 하나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한번도 든 적이 없었다. 관찰자로서 바라본 미국인들은 공격적이기도 했고 합리적이기도 했다. 규율을 투명하게 만들었고 대중들은 합의된 바에 수긍했고 스포츠에 열광했으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모바일폰을 들여다보며 도박을 하는 것도 같았다. 저녁에 동네는 적막했고 도로는 항상 붐볐다.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내 앞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일은 가끔 재미있었고 빠르게 바쁘게 굴러갔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나의 영혼을 울리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더 많은 시간을 합리화하는 데에 쏟아넣고 있었다. 더러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먹힐 리가 없음이 분명했다. 다른 곳이라고 이곳과 다를 것인가.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은 다시 무뎌질것이고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 것이 보였다. 방향성없이 흔들리는 건 몸만 자유로운 것이지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삶은 무엇이고 행복감은 어디서 오는가? 어떤 일을 해야 매일매일 생동감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을 많이 했고 나만의 방식으로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관찰자였다. 전 직장에서는 내가 벌인 일에 대해서 아무런 도전을 받지 못했고 일을 많이 하면서도 정작 해나가는 과정에는 애정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직장을 옮겼다. 옮겨서는 좋은 동료들 덕분에 많은 도전과 정신적 영양소를 끊임없이 공급받았고 디테일에 더욱더 신경쓰게 됐다. 즉 애정이 생기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따뜻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다. 점점 더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 참여자로서 살게 되니 ‘지루한 반복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을 색다른 도전들이 채우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떤 참여자가 될 것인지는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하나씩 고치고 반복하면서 행복감으로 삶을 채우는 게 멋지게 사는 것 아닐까 싶다.
<우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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