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명치유신이 시작되고, 서양 문명이 일본으로 들어오던 때에 일본인들이 한자 문화권에서 처음으로 만들고 소개한 단어들이 제법 많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민족(民族)과 국민(國民)이다. 일본인들은 오랫동안 봉건주의 사회에서 살았기에 그들은 “너는 누구냐?” 하면 “나는 사스마번(藩) 사람이다” “나는 조슈번(藩) 사람이다”라고 하며 소속 지방정권(번)을 이야기 했다.
유신 이후 천황 밑에 일본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묶어 나가야 할 참에 이것이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일본 유신정권은 “우리 모두는 천황의 한 후손이니 일본이라는 백성(民)이요 일본이란 족속(族)이다. 즉 일본민족(民族)이며, 일본이라는 나라 사람 즉 일본국민(國民)이다”라며 일본인들 머릿속에 이 두 글자를 심어 놓았다.
우리 한국인도 일제 침략이 시작될 무렵 이 두 단어를 머리에 새겼다. 그래서 독립투사들뿐만 아니라 전 한국인들이 “우리는 한(韓)민족이며 대한제국이란 나라의 사람(國民)이다”라면서 뭉쳐 대항했다. 한국인에게 ‘민족’과 ‘국민’은 곧 일제와 우리를 구분하는 어휘였던 것이다.
그 결과 백성(百姓), 시민(市民)이란 말 대신에 민족과 국민이 애국과 독립을 뜻하는 고귀한 단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단어는 독립투쟁에서부터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지탱시켜주고 세계로 뻗어 나가게 하는데 정신적인 바탕이 되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니 뭐니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장이 멈추었고, 노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인구가 자꾸 줄어서 인구 1억명 지키기에 정부가 매달려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역시 성장이 멈춘 듯하고 2050년이 되면 한국이 서서히 없어지는 길로 갈 것이라 한다. 왜 이 두 나라가 이렇게 돼가고 있을까?
민족과 국민이란 단어가 21세기 들어서 그 효력이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두 나라가 이 단어에 아직까지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날을 향해 나가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처럼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친 채 배타적이고 자기 독선에 빠져 있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이런 주장을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까?
2050년이 되면 한국의 인구가 현격히 감소하기 시작한다고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 위기를 피해가려면 민족과 국민의 테두리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이민 문호를 개방해 다른 족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을 흡수 융합하는 것만이 한국이라는 나라와 언어, 문화를 존속시키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인들이 열심히 아이들을 낳아 안구를 늘린다면 바람직하겠지만 여러 사회적 문제들과 현실적 환경 때문에 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인구 감소를 저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나라들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오직 해결책이다. 지금 정부에서는 출산 장려를 위한 별별 정책을 다 내놓고 있지만 인구 감소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는 민족과 국민이라는 두 단어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음을 열자. 그래서 한국이 소멸되지 않을 수 있다. 역사를 보면 위대한 문화를 가지고 다른 민족을 노예로 삼았던 수많은 족속들이 자신들의 폐쇄성 때문에 없어지거나 미미한 존재로 전락했다. 한국도 이런 역사적 교훈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이민을 받아들임으로써 역동성을 유지해 가고 있는 미국은 한국에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한국의 미래와 관련한 최대 위기는 인구 감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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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묵/ 전 워싱턴 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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