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지 못하는 재미있고 또 가끔은 훌륭한 생각을 한다. 얼마 전 딸 아이가 자기는 신데렐라가 되기 싫고 차라리 새언니들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일찍 죽고 새엄마에게 구박받고 사는 것이 왕자님을 만난다고 해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미 ‘권선징악, 고진감래’라는 주제에 박혀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는데, 엄마의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아이가 참으로 대견했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본인은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친구가 잘하게 되자 웃으며 박수를 쳐 주는 것이다. 엄마인 나는 좀더 열심히 해보지 않고 그저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이 속상해 집에 와서 “너도 누구처럼 좀 열심히 해 보지, 넌 속상하지 않니? 친구는 그렇게 잘하는데”라고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말았다. 아이는 조용히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몇시간이 지나 저녁을 먹는 시간에 이런 말을 건넸다. “엄마는 참 이상해. OO가 내 친구인데, 내가 친구가 잘 하는 것을 보면 좋아해야지 슬퍼했으면 좋겠어?”라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명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고집과 자존심이 커져 어린시절 가지고 있던 소중한 본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어른인 나도 그것이 해서는 안될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른이기에 가지고 있는 자존심과 허영심(다른 이에게 내 아이가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입에서 불쑥 튀어나와 버렸던 것이다.
얼마 전 나는 ‘Burning Man 이벤트’의 한 미술작품을 보았다. 어른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등을 마주댄 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어른들 내면에 존재하는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손을 맞잡으려 하고 있었다. 우리의 본성은 아이의 자유로운 영혼과 같아서 진정한 용서를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나는 우리 아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이 내가 어린 시절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는 똑같은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아이도 나이가 들고 변해갈 것이다.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나와 많은 갈등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를 대비해 지금 아이의 맑은 마음을 담은 어록을 어딘가에 기록해 두고 싶다. 아이와 내가 서로 힐링이 필요로 할 때 꺼내볼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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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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