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땅도 아니고 누구의 땅인지도 모르는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 엘제아르 부피에.
“3년 동안 10만개의 도토리를 심었고 2만개가 싹이 나왔다. 그는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 가량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땅에 떡갈나무 1만 그루가 살아남아 자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기 때문에 습관처럼 익숙해져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놀라움도 주지 않았다. 작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으나, 그것을 그저 땅이 자연스럽게 부리는 변덕 탓이라고만 여겼다. 그래서 아무도 부피에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그가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을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가 겪은 시련을 잘 아실 것이다. 숲을 보고 깜작 놀란 산림감시원이 부피에를 찾아 왔다. 이 관리는 천연숲이 자라는 것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르니 집 밖에서 불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이 노인에게 경고했다. 그 관리는 순진하게도 숲이 혼자 저절로 자라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 무렵에 엘제아르 부피에는 집에서 12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너도 밤나무를 심으러 다니곤 했다."
“그들에게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희망이 없었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공동작업을 한 흔적이 뚜렷이 보였다. 희망이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사람들이 살고 싶은 마을이 되어 있었다. 즐겁게 살아가게 된 뒤로 몰라보게 달라진 옛주민들과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합쳐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엘제아르 부피에 덕분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내 말로 풀어써야 하는데 차마 손을 댈 수 없어서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책에서 인용했다. 실화로 착각하며 읽었다. 실화가 아니라서 실망할 것은 없다. 책 속에서 부피에를 만난 후, 그가 나무를 심는 모습을 언뜻 보곤 한다. 주위에 부피에와 닮은 사람들도 보인다. 우리가 무성한 숲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음이다. 짧지만 짧지 않은 글.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삶을 살고 싶다.
<
김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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