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요?” 제법 큰 백화점의 매니저로 일하다 은퇴한 60대 후반 남자의 물음이다.“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조금은 화가 나있는 듯 보이는 분에게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내가 아니라 아내가 저보고 이상한 사람이라 그러더군요.”
그분은 은퇴하고 나니 고객들과 항상 웃음 띠며 말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출 일도 없어 마음이 아주 편했다. 일주일에 한번 친구들과 정구치는 것도 귀찮아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스포츠중계나 보며 편히 쉬는 게 제일 좋았다. 그런데 아내는 그게 아니었다. 이제 남편이 은퇴했으니 여행도 떠나고, 음악회도 가고, 골프도 배우자고 성화였다.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고 하면 아내는 화를 벌컥 내며 며칠 간 말도 안했다.
어느 날 저녁 아내와 대판 싸웠다. 은퇴한 아내 친구가 부부동반으로 유럽여행을 가자고 제의했는데 그 분이 지나가는 말로 당신 혼자 다녀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은퇴 후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며 혹시 우울증이나 치매 초기증상이 있는지 의사한테 가보라 해서 온 것이었다.
이제 수명이 길어져 노인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다. 그들 중 배우자를 잃었거나 이혼해서, 혹은 배 우자나 자식들이 있어도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 황혼이혼, 황혼자살, 독거노인, 고독사란 신용어도 생겨 났다.
노인층만 혼자 사는 게 많은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도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독신자들이 많아지면서 현대인들은 홀로 사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클리닉을 찾아온 60대 후반 노인은 정신과적으로 별 문제가 없었다. 평생을 개미처럼 일한 후 집에 있 어 보니 너무 좋아 일상생활 패턴이 좀 게을러졌을 뿐이었다. 그분은 느긋한 성격인 반면 아내는 급하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조사 통계에 의하면 부부싸움이 가장 잦은 계층이 노인들이다. 특히 같이 지내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진 은퇴 부부는 자신도 모르게 서로의 삶을 간섭한다. 싸움의 가장 큰 요인은 짜 증 섞인 일상의 대화와 화를 내는 습관이다. 서로 상대방이 배려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란 말은 육체적 접촉이 빈번한 젊은 층에 통하지 노인세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노인부부의 싸움은 후유증이 오래 간다.
오랫동안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부부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낸다. 그런 부부들은 성격도 서로 다르다. 처음 사귈 때 공통점이 많아 결혼한 부부들보다 공통점이 별로 없 는 부부들의 결혼생활이 오래 간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아마 살아가 는 중 성격이 다른 서로의 좋은 점 을 저절로 배우기 때문인 것 같다.
사회적,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홀로의 삶을 고집하는 은퇴자들이 간혹있다.앞서 말한 은퇴 남성은 독신은 아니지만 자생력이 있는 독신처럼 살고 싶은지도 모른다.
항상 웃으며 살아도 짧은 인생이기에 노인부부들은 싸움을 되도록 적게 하는 게 유익하다. 드물게는 노인이 부부싸움 끝에 자살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클리닉에 찾아온 노인에게 이런 조언을 하면 어떨까?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어느 특별한 날을 잡아 사랑한다고 적은 예쁜 카드와 꽃다발을 아내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조용한 식당에서 외식을 하며 일단 손자손녀 얘기로 기분을 푼다. 대화 중 넌지시 아내에게 마음고생을 시켜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결코 자신이 잘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다음 서로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머리를 맞대고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이 글을 써가면서 문득 법정스님이 생전에 한 말이 생각난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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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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