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도 좋고 아는 것도 많은데다 성격까지 똑 부러지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똑똑하다”고들 말한다. 머리에 든 것이 많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에 머뭇거림이 없는 사람들이다. 똑똑한 이들은 학업성적이 뛰어나고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도 높다. 똑똑하다는 소릴 듣는다면 그것은 누구나가 부러워할만한 평가요 칭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똑똑한 것이 항상 지혜롭거나 현명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머리는 대단히 뛰어나지만 현명하다는 평판은 얻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 현명함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 같은 감성적 자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아무리 옳은 소리라 하더라도 분위기와 상대 기분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대를 설득시키기보다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종종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이 결정됐다. 온갖 악재들을 극복하고 샌더스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며 후보 티켓을 거머쥔 힐러리의 대선 전망은 아주 밝다. 상대가 워낙 문제투성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것일 뿐, 승산이 높다고 해서 힐러리가 노정해 온 캐릭터 문제들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힐러리가 똑똑하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렇지만 레이스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과 비판에 대처하는 것을 보면 현명하다거나 지혜롭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가장 끈질기게 힐러리의 발목을 잡았던 이메일 스캔들의 경우 “대단히 부주의했다”는 FBI의 질책과는 별도로, “전직 국무장관들도 다 그렇게 해 왔다”는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려 든 것은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LA타임스의 한 독자는 “마치 초등학생이 잘못을 들키자 다른 급우들도 그렇다고 선생에게 일러바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기도 했다.
국무장관 퇴임 후 월스트릿에서 거액을 받고 수차례 연설한 데 대한 비판이 나오자 “대통령 후보가 될 줄 알았다면 그런 연설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가 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기에 연설을 했다는 얘긴데, 상황에 따라 처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가 대단히 궁색해 보인다.
이런 식의 변명보다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솔직히, 그리고 깨끗하게 실수를 인정했더라면 훨씬 더 당당해 보이고 대중의 이해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힐러리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호감도가 높은 것은 이런 처신들이 쌓인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누구 탓도 해서는 안 된다.
똑똑함에 특권의식까지 더해진다면 자칫 위험한 돌부리가 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돌부리에 자주 걸려 넘어진다. 클린턴 부부는 지난 수십년 동안 백악관 생활 8년을 포함, 권력의 정점과 언저리에 계속 머물러왔다.
이런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법적, 윤리적으로 그릇된 일을 하면서도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특권의식’이나 ‘자격의식’에 빠지기 쉽다. 똑똑함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클린턴 부부가 이해하기 힘든 처신을 반복하는 것은 이것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힐러리는 그동안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과 높은 비호감도에 대해 “극우의 공격과 공화당의 음모론 탓”이라며 억울해 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유권자들의 신뢰는 노력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 (You‘ve got to earn it)이라며 그동안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힐러리 자신과 민주당을 위해 긍정적인 변화이다.
힐러리의 가장 큰 적은 트럼프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다. 그저 똑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정서를 헤아리고 상황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현명한 정치인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힐러리에게 이것은 11월 승리 뿐 아니라 그 이후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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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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