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을 다닐 때 전교생 자랑대회가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와 준비한 장기를 자랑하는 날이었다. 이날 시작시간이 다 돼 가도록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계속 창가를 내다봤다.
드디어 고대하던 엄마가 학교 정문을 지나 밑에서 올라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 엄마가 평소와 다르게 퍼머를 하시고 온 것이다. 아마 나름 예쁘게 보일려고 퍼머하신 것 같았다. 그러나 꼬불꼬불한 퍼머가 유난히 눈에 뛰었다. 나는 혼잣말로 “아이고, 엄마, 왜 오늘 같은 날 퍼머를 하고 오셨어요?”라고 했다.
엄마가 나에게 “어디로 가야 돼니? 늦지 않았지?” 물어보시는데 나는 그만 “엄마, 오늘 자랑대회 안한데요. 그냥 가셔도 돼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누가 볼까봐 재빨리 몸을 숨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월이 지나 나도 엄마가 된 후에야 엄마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며 “엄마 죄송했어요. 그때. 지금이라도 용서해 주세요” 했더니 엄마는 “그런 일도 있었어? 난 기억도 안나는데” 하신다. 내가 오랫동안 죄송해하며 살았다고 말씀드렸더니 엄마는 “왜 빨리 얘기 안했니?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당연히 용서해주지!” 하셨다.
엄마가 이렇게 쉽게 용서해 주실 줄 알았더라면 오랫동안 미안해하며 죄책감 갖고 살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엄마와 좀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을텐데...싶었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남을 멀리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죄책감이나 자신감을 잃은 것을 감추기 위함이라고 한다. 또한 자신의 약점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적 이유가 크다.
어릴 때 아이가 질문할 때 “저리 가서 놀아! 지금 바빠! 쓸데없는 것 물어보지 말고 공부나 잘해!” 하고 외려 부모가 화를 내면 무안당한 아이는 부모와의 대화를 꺼리게 된다. 좋은 관계맺기가 어려워진다.
부모와 자식 간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미안한 것은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할 일은 구하는 것이 좋은 듯하다. 그리고 부모들이 먼저 솔직히 터놓는 대화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준다면 자녀들 또한 사회생활에서 다른 이들과 교제할 때 더 원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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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유씨는 SF주립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알라메다 아거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아시안헬스서비스(AHS) 심리학 카운슬러 활동하면서 컬리지 오브 알라메다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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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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