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줄곧 서성이고 있었다. 무슨 할 일이 있는데 못하고 있는 것처럼, 내면에서는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미처 알아내지 못한 나는 서성이기를 반복한다. 오랫만에 들어간 서재에서 즐겨읽던 시집들을 꺼낸다.
유학을 오면서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바리바리 싸들고 왔던 내 30년 지기(知己)들이다. 책을 산 날짜, 장소와 한줄 메모들로 갈변된 책갈피에서는 옛 친구의 쪽지편지도 눈에 띈다. ‘잊고 산 시간들, 눈부신 그리움으로 밀려오다.’
이승훈의 당신의 방이란 시집 표지 안쪽에 연필로 써 놓은 메모는 이젠 흐릿해졌지만, 강렬하게 내 가슴을 치고 들어와 한 방 먹인다. 가장 찬란했던 그 시절에도 내겐 그리움이 있었나보다. 그러한 옛 추억과 오래된 책 냄새 속에 반짝이는 날갯짓으로 내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
신예선 선생의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가 최근 출간되었던 것이다. 선생의 일생이 고스란히 글로써 정돈되고 채색을 더한 이 소설은 그의 예지인듯 행간마다 동행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함께 여행할 것을 권유한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예산 역전에서 울고있는 소녀가 소설가로, 나림 이병주 선생의 특별한 제자와 마리오 바르가르 요사의 벗으로 나이를 더해가면서 함께 그 시대를 느끼고 그 공간을 방문케하는 것이다.
그런 선생의 공간 속에서 나는 나의 파리와 라틴지구(Quartier Latin),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ey)과 조우를 하고, 수 번을 다가가 내 공간이라 여겼던 곳에서 다시 선생의 흔적을 발견한다. 마치 시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의 역사를 나누게 하는 강한 흡입력에 나는 12시간을 쉼없이 빨려 들어갔던 것이다.
책을 마치고 맞파람에 사각거리는 유프라테스를 듣노라니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감동임을 알기 때문이다. ‘삶에서 나는 누군가의 내면을 알아주고 흔들어 깨워 준 적이 있는가?’ 선생을 통해 다시 방문하게 된 내 꿈의 공간과 사랑의 시간들로 나는 지금 벅차다.
눈부시게 밀려온 그리움은 그동안 잊고 있던 나를 재상영하며 어깨를 들먹이게 한다. 누군가와 내면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무디어진 나를 흔들어 깨워주는 이가 옆에 있으며, 그를 선생님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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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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