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2대 순종황제 본명(이 척)은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부황 1대 고종황제로부터 일본에 의한 강제양위를 받아 마지막 황제가 됐다. 마지막 황제가 국민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짐이 확연히 스스로 결단을 내려 조정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했던 대일본황제폐하에게 양여해….”라고 했다.
이때가 서기 1910년 8월 22일, 세상 어떤 황제가 스스로 결단해 나라와 백성을 타민족에게 넘겨주며 더욱이 모친(명성황후)을 시해한 원수의 나라에 제정신을 갖고 국권을 넘겨줄 수 있었겠는가?
우리에게 결정적 실수는 제대로 된 군대 하나 없었다는 데 있다. 일본과 제대로 군대끼리 싸움도 못해보고 오적의 손에 의해 끝장난 제국 그리고 해방. 1945년 8월9일 해방 일주일전 북한에 소련군 제1 극동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이 원산, 청진, 나진을 점령하라고 386, 393, 399사단에게 명령했다.
8월15일 일왕이 항복하고 당시 일본군 평양부대 방위 사령관 다케나토 중장은 소련군 치스차코프 대장에게 항복문서에 조인하는 과정에서 “국내 빨치산과 전투했던 일은 한반도에서 단 한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조선에 10여개 사단과 수많은 경찰, 헌병으로 35년간 그 어떤 군사 무력으로 자기들을 건드릴 수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광복을 맞은 것이 아닌 미국과 소련, 중국 등 강대국에 의해 조국을 되찾았다. 2차 대전이후 미국과 일본이 서명해서 남한을 찾았고 소련과 일본이 서명해 북한을 찾았다.
1953년 6.25 사변이후 휴전협정 조인식 때에는 미국측 대표 클라크장군을 대신해 해리슨장군과 북한의 남일, 중국측 팽덕회가 서명해서 휴전이 성립됐다. 아무리 작전권이 없었던 한국군이지만 우리에게도 참모총장도 있고 수많은 장군이 있었건만 수백만 사상자를 낸 당사국은 서명 한 장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다. 힘이 없는 민족의 처참함을 우리는 불과 60, 70여년전에 뼈저리게 당했다. 지금 성주의 사스 배치는 단호해야한다. 집단이기주의를 내세우며 참외밭을 갈아엎고 군수가 삭발하고 앞장서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를 좌지우지하며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했나를 생각해야한다. 사대주의정도가 아니라 그들은 삼국시대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의자왕을 볼모로 잡아가고 백제의 포로들로 고구려를 정복하고 결국 우리 손으로 우리민족을 멸망시키게 하고 말았다. 6.25사변 때에도 인해전술에 걸려 통일을 목전에 두고 분단국으로 남게 됐다.
지금 중국에서는 힘과 경제력을 앞세우며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하게 밀어 붙이고 있다. 우린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외세에 침략을 받았을 때 국민전체가 단결되는 힘이 곧 우리들의 국력이 된다.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지도층부터 무서우리만큼 철저한 자기 성찰과 자제가 필요하다.
사법부가 썩어 냄새가 온 나라에 가득한데 누구에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소는 잃어버릴 수 있다. 허나 홧김에 외양간을 태워버린다면 집 나간 소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 반드시 그 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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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규(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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