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학계에서 과잉진료의 병폐와 부작용을 경고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의료시스템이 수익을 위해 환자를 양산해내고 과다하게 치료와 투약을 함으로써 환자의 건강을 오히려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과격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의료현실을 들여다보면 마냥 허황된 주장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최근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 연구소는 부유한 나라들에서 갑상선암으로 판정받은 사람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의료기술 발전에 따른 과잉진단의 결과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대표적인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연구소는 2003~2007년 사이 갑상선암으로 판정받은 여성 중 한국은 90%, 미국 호주 등은 70~80%를 과잉진단의 결과로 추산했다.
지난 해 한국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30년 사이에 갑상선암 환자가 무려 30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수치다. 결론은 한국인들이 과도하게 받는 건강검진을 통해 별 다른 치료가 필요치 않은 사람들까지 갑상선암 환자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이유로 척추수술 환자들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비판은 일본 의학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1998년 일본정부가 정한 기준 혈압치는 160/95였다. 그런데 이것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2000년에 140/90으로 낮아지면서 일본의 고혈압 환자 수는 하룻밤 사이에 1,660만에서 3,700만으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혈압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다른 성인병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해 ‘당신의 의사가 당신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라’(don‘t let your doctor kill you)는 다소 살벌한 제목의 책을 펴내 화제를 모았던 미국의 여의사 에리카 슈워츠의 주장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녀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과잉처방과 과잉검사 등 ‘모든 것이 과잉’(over everything)인 상태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꼬집는다. 물론 이 모든 과잉은 수익을 늘리기 위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환자는 의사의 권위에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하고 지시에 순순히 따르는 ‘을’의 입장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돈벌이를 위한 과잉진료는 비윤리적인 행위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의료비의 과잉지출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종종 환자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많은 치료와 투약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생명까지 단축시키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저명한 암 학자인 이제키얼 이마누엘 박사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슈워츠 박사와 비슷한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에서 실시됐던 투약중단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한꺼번에 여러 질병을 앓고 있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환자 당 평균 다섯 개의 약을 끊도록 해본 결과 이로 인한 사망이나 부작용이 거의 초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투약을 시작해야 한 노인은 2%에 불과했다. 이마누엘 박사는 “과잉투약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사들에게 최소 1년간 환자들에 대한 투약을 중단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폈다.
병원 가는 게 편의점 가는 것처럼 돼 버린 시대에 환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그러면서 병원과 의사, 제약업체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물론 건강을 지키고 치료를 하려면 의사들과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더 많은 치료와 투약’을 ‘더 나은 치료’로 인식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자신들이 받게 될 치료와 약이 어떤 이점이 있고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는지 정확한 정보를 얻은 환자들일수록 그 치료와 약을 택할 확률이 낮아진다는 연구는 환자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깨우쳐 준다. 과잉진료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면 의사에게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필요할 경우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용감한’ 환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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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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