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집필한 ‘미국사’(김영사 간)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신대륙 발견부터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500년 미국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신용석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이 번역을 맡아 원작의 미문과 의미를 충실히 살려냈다는 평이다. <편집자 주>
-유럽 역사 바꾸다
아메리카의 독립전쟁은 아메리카 못지않게 유럽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18세기의 영국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 바스티유 감옥 점령이라면, 18세기의 유럽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은 필라델피아의 대륙회의라고 할 수 있다.
독립전쟁 이전까지 조지 3세와 장관들은 매수를 비롯한 온갖 회유 수단을 통해 영국의 전통적인 자유를 유린하고 나아가 의회를 억압해 절대 전제주의적인 통치체제를 수립하려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아메리카에서의 탄압정책이 실패하자 영국 보수당은 실각하고 전쟁을 반대하던 자유당이 집권했다.
자유당의 버크와 피트는 선두에 서서 1688년(윌리엄 3세의 명예혁명)의 정치 원칙을 재확인하고 의회정치를 수호했다.
프랑스는 아메리카 독립전쟁에 막대한 전비를 지출함으로써 왕국 재정이 파탄 나고 이것이 왕정 몰락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신생 공화국 탄생, 권리헌장 등의 새로운 용어는 로샹보군 청년 사관들의 보고안과 함께 프랑스 대혁명의 선구자들에게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물론 프랑스는 이 사상을 아메리카와는 다르게 이해했는데, 이 사실은 1793년 혁명 또는 나폴레옹 시대에 명백히 볼 수 있었다. 여하튼 프랑스 왕정 말기에 프랑스인들이 이념과 사례를 미합중국에서 얻은 것만은 사실이다.
-13개주의 미국을 하나로
전쟁 후 13개 식민지는 13개의 주가 되었다. 그러나 13개 주는 제각기 하나의 국가로 행세하면서 시기, 반목, 대립 등을 거듭했고 별다른 권한도 없는 연합회의가 엉성하게 각 주를 통합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주는 강력한 통합을 원치 않았다.
전쟁을 하던 몇 해 동안은 개별적인 욕구보다 전체를 위한 단결 의지가 강했다. 그리고 적군에 대항해 함께 싸웠다는 사실은 13주의 사람들에게 공통의 추억과 영예를 안겨주었다.
이번 전쟁은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의 사람들을 군대라는 하나의 집단 속에 융합시킴으로써 서로 이해하고 존경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전쟁이 아니었다면 만나지도 못했을 동떨어진 지방의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사례까지 생겼다.
일례를 들면 보스턴에서 온 청교도들은 버지니아의 영국 국교도가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의 지원 없었으면 승리 불가능
전쟁의 결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 활동의 필요성 덕분에 세계적인 인물로 손색이 없는 아메리카의 지도자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한편 영국의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조직계통에서 갑자기 이탈한 탓에 배우고 이해하면서 일해야 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1783년 미합중국은 아직 하나의 국가가 아니었으나 이를 위한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메리카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워싱턴도 여러 번이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황이 나쁠 때도 워싱턴은 강한 용기를 보였지만 로샹보의 육군과 그라스 제독의 함대가 오지 않았다면 그는 역사상 전혀 다른 인물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국왕의 지원은 이 전쟁에 프랑스 대혁명 같은 정치혁명 또는 러시아 혁명 같은 경제혁명이 아닌 독특한 특성을 부여했다.
-독립전쟁이 없었다면
설령 이 시기에 아메리카가 독립 운동에 실패했더라도 언젠가 반란이 폭발해 승리를 거뒀을 것이다. 아메리카의 번영과 풍부한 자원은 모든 분야에서 이민자를 지속적으로 흡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통치자의 힘이 닿지 않는 변경의 미개척지에서는 특유의 활력으로 사람들이 수없이 늘어났을 테고,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는 인구 증가로 승리할 확률이 높다.
물론 전쟁을 하지 않고 대영제국 안에서 완전히 독립한 자치령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이 경우 대영제국 국력의 중심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해결은 워싱턴과 로샹보의 승리가 낳은 결과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독립전쟁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이 거대한 국가는 어느 때든 세계의 희망을 한 몸에 모을 존재였다.
이런 자유는 완전한 분리가 이뤄지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현대사가 보여주듯 1776년 전투의 진정한 목적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프랭클린이나 버크처럼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대영제국을 설득해 전쟁과 분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 귀중한 인간성 실험은 과거에 얽매여 왜곡되고, 그 시대에는 좋았을 수도 있는 지도자들의 성공이 현대의 우리에게는 유감스러운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
신용석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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