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여유롭게 시내로 가기 위해 바트를 탔다. 바트에 오르자마자 습관대로 안락한 자리를 찾아 앉아 색안경을 끼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누구와 눈을 맞추는 것도 어색하기도 하고 흔들거리는 승차감에 잠시 단잠을 청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내가 앉은 바트 칸에 두 청년이 뮤직박스를 들고 타더니 그 중 한 청년이 아주 당당하게 음악을 틀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더해 댄스를 추려고 하니 봐달라고 했다. 이어 큰 음악 소리가 들렸고 청년의 아주 익숙한 브레이크 댄스가 이어졌다. 그 용기가 가상했다. 춤 실력으로만 보면 미국의 TV 방송인 “So you think you can dance”라는 프로그램에 도전해도 될 만했다. 그러한 생각에 잠겨 보던 댄스는 어느새 시끌법석하고 신나던 음악과 함께 끝이 났다.
잠시 댄스공연을 보았던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기차 칸에 울렸다. 그러나 뒤이어 보여진 다른 청년의 행동에 어리둥절해진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모자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길거리 공연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질문을 하면 놀랄 것도 아니지만, 그 상황이 당황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승차비를 내고 탄 바트에서 적당하게 쉬려 했던 내게 그들이 아주 당당하게 요구하는 공연비(?)는 불쾌함마저 느끼게 했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쉬는 시간을 빼앗아간 것도 모자라 지갑까지 열라니 어이가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나만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청년의 브레이크 댄스를 보고 열렬히 박수를 친 사람들조차 모자 돌리기에는 얼굴을 돌리며 무어라 한마디씩 하였다.
정이 메말라가는 요즘 사회라 탓하기에는 지나치고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보였다. 돌리기를 마친 빈 모자가 그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도 젊은 나이에 적은 돈이라도 벌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희망을 보았다.
비록 지금은 바트 안에서 댄스를 추고 모자를 돌리지만 언젠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싶다는 간절한 젊은이들의 욕망을 보았다. 어떤 사회적 지위, 명예, 권력보다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가 오늘의 배고픔, 내일의 절망일 수도 있다. 너무 불투명한 미래지만 그래도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두 청년들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밝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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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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