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추석이 지나고 추분도 지났다. 어느새 가을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뚜렷한 구분이 없는 이곳... 달력이 10월을 가리키는 것을 보면서 ‘어, 벌써 가을이네!’ 하지만, 항상 빠르기만한 세월의 힘을 느낀다. 앞마당 감나무는 봄에 싹이 돋고 꽃이 피었으며 여름에는 꽃이 피고 진 자리에는 감이 맺히고 커졌다.
가을인 지금은 감이 고운 색으로 익고 잎들이 단풍으로 물든다. 이 잎들이 다 떨어지고 감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보이면 겨울이다. 이곳 날씨가 한국처럼 뚜렷한 변화는 아니더라도 사계절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자연의 오묘함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감나무를 보며 나도 인생의 가을을 여유롭고 풍성하게 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사색을 하니 차이코프스키의 사계가 떠오른다. 자연이 보여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움을 음률로 표현한 음악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 음률은 인생 가을을 맞이한 내 가슴에 수확을 앞 둔 농부가 느끼는 풍요로움을 갖게 한다. 마당 가운데 있는 감나무에서 잘 익은 감을 따 바구니에 가득 집 안으로 들고 오니 부자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이제는 인생 가을의 결실을 거두면서도 이런 행복감을 맞이하리라.
젊은 시절이 버무려진 양념맛도 채 숙성되지 않아 서로 어우러지지 못한 겉절이라면 지금의 나는 그에 비해 잘 익은 묵은지나 오랜 정성으로 숙성시킨 장맛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젊은 시절은 해진 청바지나 어지간한 옷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다녀도 그 나름 멋으로 보이거나 개성으로 보인다.
봄, 여름의 푸름이 보여주는 마술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머니의 묵은지나 장처럼 정성으로 장독 항아리에 오래 묵혀 잘 숙성된 맛이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노력도 하기 전에 잘 삭아 농익은 맛을 상상하니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정성과 오랜 경험으로 빚어진 맛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인생 가을은 그런 맛을 그리워하며 지키고 싶은 나이다.
봄 여름을 바쁘게 지냈으니 풍요로운 열매에 감사하는 여유를 맘껏 누리고 싶어지는 가을이다. 화장기 있는 얼굴에 우아한 옷차림으로 싸늘해진 공기와 바람을 맞으며 잠시 외출을 하고 싶다. 인생 가을을 느끼며... 공감이 가는 시 몇 구절에 떠올려 보곤 소리내어 혼잣말을 해본다. "그래, 인생 사계의 으뜸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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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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