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면 단풍이 생각이 난다. 그렇지만 나는 그림이나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꽃 같은 단풍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매년 10월이 되면 단풍 구경을 가고 싶은가 보다. 학창시절 어느 해 가을, 아버지를 따라 설악산으로 단풍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아름다운 단풍이 펼쳐진 풍경에 대한 기대로 몇 일 밤잠을 설치다 간 여행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다른 풍경에 나는 많이 실망했다.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한 때라 바위 틈 사이 같은 곳에 조금씩 보이는 단풍이 다였던 것이다. 나는 돌아오면서 앞마당에 있는 단풍나무가 훨씬 예쁘다고 투덜대었다. 얼마나 섭섭했는지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에 웃음이 저절로 난다.
단풍은 기후 변화로 나뭇잎에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해 나뭇잎으로 가는 물과 영양분을 차단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나무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다. 그래서 가끔 가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오매불망 불꽃처럼 단풍으로 물든 풍경을 그리는 나의 갈망은 포기하기 싫었다. 그래서 몇 해 전 한국을 갔을 때 시간을 내어 큰 기대를 갖고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을 찾았다. 아, 그런데 이럴 수가... 그 해에는 이상기온으로 쌀쌀한 가을 기온이 아니라 단풍이 채 들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그래, 단풍과 나는 인연이 없나 보다.' 하며 화려한 단풍과 거리가 먼 내장산을 보았다. 그렇게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단풍과 인연이 없다 생각했던 나는 어느 날 집 앞 길가에서 가로수의 고운 단풍을 보았다. 그 순간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봄을 찾아 나선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인은 들과 산을 온통 헤매며 해가 저물도록 봄을 찾았으나 봄을 찾지 못했다.
시인은 할 수 없이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 왔다. 지친 시인이 마당에 들어서자 매화 가지에 핀 꽃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향기를 맡은 시인은 온종일 찾아 헤매던 봄이 바로 꽃향기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을 시로 표현하였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단풍도 내 앞에서 매년 고운 색을 보인 가로수를 통해 볼 수 있었는데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은 먼 곳에 있는 줄 알고 찾아 해맸던 것이 후회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소중한 것을 몰라보는 것이 단풍만은 아닌 것 같다.
<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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