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어둠이다. 벽이다. 출구를 찾아 이리저리 부딪쳐보지만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먼지 속을 애타게 뒹굴고 있을 뿐이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대상 없는 대상에게 나의 입을 열어 말을 건네고, 가슴을 열어 보이고, 때론 혼자 중얼대기도 하고, 어쩌다가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반향없는 메아리와 소통하고자 하는 소리없는 갈구이자 움직임 없는 마임이다. 글 뿐이랴, 그림, 조각, 하다못해 요리까지, 모든 것이 나의 생각을 빌어 본성에서 우러나와야 할 그 무엇, 다만 한 줄기의 섬광이라도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 아니던가.
날이 갈수록 늘어만가는 몸무게와, 앉기만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졸음이 증명하는 이 나태함과 그 어느 것에도 신명나지 않는, 여유를 가장한 얼음장 같은 열정, 그 벽 속에 갇혀있다. 지금 나는.
편안함에 길들여진 탓일게다. 배불리 밥을 먹고 따스한 담요를 둘둘 감고 푹신한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바보상자에 취해 울고 웃고 떠드는 동안 편안함이란 복면을 쓴 도둑이 슬그머니 들어와 금고에 남아있던 열정이란 보물과 창의적 정신이 담긴 비밀 서류들을 몽땅 가져가버린 듯싶다. 도둑이 든 것을 알 수있는 증거로는 그가 남기고 간 나태함이란 발자욱이다.
어릴적 우리 집에 도둑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날은 명절이었다고 기억되는데 도둑은 우리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TV를 보는 사이에 뒷 문을 통해 부엌에 살그머니 들어와 테이블 위의 은수저와 쌀통의 쌀을 몽땅 훔쳐갖고 달아난 것이다. 온 식구들이 흥분해서 경찰에 알리려하자 아버지께서 만류하시며 “그 도둑은 아마 이 명절에 배곯는 자식들을 먹이려고 쌀을 훔쳤을 것이고 병든 노모나 아내에게 약을 사 먹이기 위해 은수저를 훔쳤을 것이니 그런 도둑은 고발하지 않는게 좋겠다” 하시는 것이었다. 온 식구들은 순간 숙연해졌었는데 지금 난 그 말씀이 왜 떠오르는걸까.
그렇다, 편안함이란 생계형 도둑일뿐 도둑맞은 것은 순전히 나의 탓인 것이다. 고생 뒤 생활의 편안함을 누리는 것이 죄는 아닐터, 그러니 편안함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창작의 열정이 배고픔과 삶의 고통과 치열한 경쟁과 참기 힘든 인내와 투지에 의해서만 불 붙는다면 그 것은 어떤 영웅적 작가의 일화는 될수 있을지언정 수많은 작가들이 스스로 생활의 편안함을 버리고 고통의 구덩이로 기어들어가야 한다는 모순을 가져온다. 비싼 비행기 표를 사서 스페인까지 날아가 일부러 열악한 공동 숙소에 머물며 계획적으로 하루에 수십킬로씩 걸으며 성자의 발자취를 흉내내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자연발생적인 것과 인위적으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처한 이 벽 속에 갇힌 어둠은 배불리 먹은 밥도 아니요, 따스한 담요 탓도 아니며 바보상자 때문도 아닐테니 그 것들을 버린다 한들 이 벽을 뚫고 빛이 들리 없을 것이다. 그 것들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도둑을 맞게끔 방심한 것,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고 그 안에 안주하면서 종속되어 버린 것이다. 계속 배부르기 위하여 밥을 모을 생각에 몰두하고 더 따스하기 위하여 거위털 담요를 사려고 애쓰고 바보상자의 재미에 빨려들어가 내 창의적 시간들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졸부가 부를 누리지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되듯… 누리는 것은 자유로와지는 것… . 그 때에야 비로소 내 안으로부터 빛이, 열정의 불씨가 살아나 이 갇힌 어둠을 걷어낼 것임을 오늘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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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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