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으로 다가온 이번 미국 대선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두 차례 토론의 수준은 민주주의의 모델이라는 미국 대선후보들의 것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저급했다. 트럼프가 워낙 기괴하고 자질이 떨어져 그렇다는 분석이 대체적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정치시스템이 점차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며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진단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토론뿐 아니라 캠페인 내내 쓰레기처럼 쏟아져 나온 상호비난과 폭로는 듣기 민망할 정도다.
그런 가운데 또 하나 불가사의한 것은 트럼프의 지지율이다. 최근 공개된 음담패설 테입과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성추행 폭로는 불리한 형세의 트럼프에게 ‘확인사살용’ 직격탄이 돼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일이 손으로 꼽기조차 힘들 정도의 추문과 스캔들 속에서도 그의 지지율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전반적으로 클린턴이 4~11% 정도 앞선 것으로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양자 대결에서 트럼프는 여전히 40%대 초반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을 논하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데도 트럼프의 지지율은 꿈쩍하지 않는다. ‘콘크리트 지지율’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뉴욕타임스는 2차 TV토론 다음 날 펜실베니아에서 열린 트럼프 집회분위기를 전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집회에 모인 지지자들은 언론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사기라고 비난하며 미디어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트럼프에 호의적인 정보들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트럼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했다. 마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부흥회를 연상시키는 뜨거운 분위기였다.
일부 열광적 트럼프 지지자들의 이런 모습과 태도는 그리 낯설지 않다. 광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집단에서 흔히 목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종말론을 신봉하는 종교단체들을 연구했다. 페스팅거는 이 단체들이 예언했던 종말론이 예외 없이 빗나갔음에도 이들은 대부분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종말이 오지 않았으니 자신들의 믿음의 잘못됐다고 깨달아야 함에도 신자들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극성이 되었다.
이해하기 힘든 이런 현상을 페스팅거는 ‘인지부조화’로 설명했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사실이 달라 마음속에서 부조화가 일어날 경우 교묘한 마음의 작용을 통해 이런 부조화를 해소해 나간다는 것이다. 종말론 단체들의 경우 신자들은 종말이 허황된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들의 믿음이 신을 감동시켜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시켰다.
뉴욕타임스 보도처럼 트럼프 골수 지지자들이 내뿜는 열기는 클린턴 지지자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뜨겁다. 집회에 나온 한 백인 남성은 음담패설 테입에 대해 “트럼프가 건강한 이성애자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와 관련한 어떤 추문이 터져 나와도 이들의 지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여성에 관한 음담패설을 이성애자의 증거라고 우기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 친일행적과 좌익이력이 밝혀졌을 때 그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보인 반응도 비슷했다. 박정희를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고까지 부르며 추앙하는 ‘박정희교’의 신자들에게 다른 이들의 친일과 좌익은 ‘나쁜 짓’일지 몰라도 박정희의 행위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악의적인 날조’로 몰아가거나 “그로서는 시대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합리화하면서 자신들의 인지부조화를 해소한다.
다음 달 대선의 판세가 이미 클린턴 쪽으로 기울었다는 대체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진영이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광적인 열기가 투표장으로 이어질 경우 선거는 훨씬 더 치열한 접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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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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