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8일에 나는 그동안 지난 오년간 한국일보에 기재해왔던 수필들을 모아 ‘웨스트버지니아의 오두막집’이란 제목으로 나온 책을 기념하기 위해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약 150명이 모인 가운데 그런대로 성대하고 즐거운 잔치였다. 아마 내 생애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잔치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번이 여섯번째 출판이지만 이번처럼 한국일보에 대대적인 홍보가 된 것도 처음이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를 한 것도 처음이다. 내 가족과 고교와 대학 동창들 이하 이곳 라스모어에 사는 이웃들과 우리 교회 교인들, 버클리 문학 동호인들, 또 평소에 내 글을 사랑해 왔던 여러 팬들이 오셔서 자리를 빛냈다.
아마 내 생전 이런 큰 잔치는 그날이 처음이고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날을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 지난 몇달간 이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나는 많은 날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전전긍긍했다. 잠도 설쳤다. 잔치란 어떤 잔치건 간에 그날 막상 뚜껑을 열어봐야 알지 그 전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음식은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 사람 숫자를 모르니 모든 것이 짐작으로 밖에 할 수가 없다. 잔치가 끝나고 친구들과 이웃들이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좋은 잔치였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내가 낭독한 자작시인 ‘잔치 마당’이란 시에서도 말했듯이 이제 곧 80고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나이보다 젊어보인다고 말해주어도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고 팔십대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잔잔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내가 오십대가 되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을때 나는 두가지 길위에서 고민했다. 한번 남들처럼 돈을 벌어볼까 아니면 글을 쓸까. 내 친한 미국 친구가 부동산으로 성공하고 나를 끌어 들이기 위해 애 썼을때, 나는 잠깐 흔들렸다.
미국에 온 후 평범한 주부로만 살았지 한번도 돈을 벌어보지 못한 나는 돈도 벌고 싶었고 또 그동안 뒷전으로 밀어두었던 내 젊은 날의 꿈이었던 글을 쓰고 싶다는 염원을 이루고 싶었다.
결국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을 이겼다. 아무리 내가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글을 쓰지 못한다면 나는 무언가 허전하고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물질보다 영혼을 택했다. 나는 눈에 보이는 행복보다 보이지 않는 행복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선택을 한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명품이 되기를 원한다. 아무리 비싼 옷이나 장신구를 걸쳤다해도 사람이 명품이 되지 못한다면 그 겉치레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왕이면 맑은 영혼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어떤 때는 친구들과 쇼핑센터를 기웃대다가 ‘어머! 이 옷 정말 싸다. 단돈 이십불 밖에 안하네!’하며 쓸데없이 또 사버리고 만다. 이게 인간의 변덕이다.
요즘엔 여기저기서 독자들이 책을 보내달라고 주문을 한다. 내 글을 지난 몇년 동안 오려서 스크랩 북을 만들어 놓고 두고두고 읽는다는 독자들의 말을 전해 듣고 나는 송구하기도 하지만 마음 뿌듯한 기쁨을 맛본다. 이 행복은 순수한 기쁨이다. 이 세상에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공감과 감동을 느낀다면 나는 더 바랄나위가 없다.
이 기쁨 때문에 글을 쓰게 되나 보다. 아무튼 지난 10월 8일은 내게 잊어버릴 수 없는 생애 최고의 날이 되었다. 그러나 인생이 그렇듯이 모든 것은 흘러가 버리겠지. 기쁨도 영광도 슬픔도 잠시 우리 곁에 머물다 가는 뜬 구름같은 것이겠지. 그날 하이라이트였던 우리 손녀 딸 두명이 낭독한 시 ‘우리 할머니’는 그날을 정점으로 어느날엔 그들 곁을 홀연히 떠나가 버리겠지. 그러나 내 자식들과 손주 손녀들은 그날의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그들 가슴 속에 묻어두고 가끔은 그 소중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겠지. 미소를 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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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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