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랑 같이 더 많이 밥 먹지 못한 것, 더 좋은 곳에 모시고 가지 못한 것, 더 많은 얘기를 듣지 못한 것, 그리고 내 생일인 7월달에 피어서 내가 생각난다시던 그 빨간 카나리아 꽃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꽃인지, 할머니 정원 어디쯤에 피어있었던 꽃이였는지 여쭤보지 못한 것, 그렇게 후회되는 일들만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지금 한인봉사회에서 일할 때에 할머니 나이대 어르신들을 뵈면 우리 할머니를 뵙는 것처럼 좋다.
나는 사실 자라면서 어르신 세대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을 겪은 세대인 우리 할머니나 다른 어르신들이 슬프다, 힘들다, 아프다 하신 말씀을 나는 당연하게만 여겼었다.
한번은 우리 할머니 또래의 한인 어머님께서 전쟁통에 잃어버린 남편과 따님을 두고 미국으로 오셨다는 말씀을 해주시며 서럽게 우셨다. 그런데 집으로 가시기 전 내 손을 잡아주시면서 “젊은이들한테 좋은 것만 들려줘야 되는데…내가 이런 말해서 미안해”라고 하셨다. 사실 그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속에 담아두셨던 이야기를 나눠주신 것에 감사하기만 했었는데 너무나 미안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조금은 놀랐었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으셨을 텐데 나누지 않으셨구나 싶어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할머니께서 간혹 할아버지 얘기를 하느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이야기를 꺼내시면 그저 학교 역사책에서 배운 우리나라 역사라 신기하게만 생각했다. 그 모든 이야기가 얼마나 서럽고 힘들고 아프셨을까 이제서야, 내가 우리 할머니 전쟁 겪으셨었을 때의 그 나이가 되고 나서야 느낀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했듯 어르신들은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좋은 것만 주고 좋은 것만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녀와 손주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씀, 묻지 못할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주기 위해 당신들 인생을 지금까지도 포기하고 사셨던 그 마음이 헤아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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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씨는UC 버클리대학에서 젠더학과 정치학 전공으로 졸업한 뒤 이스트베이한인봉사회(KCCEB)에서 소셜서비스, 이민법, 가정폭력상담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한인커뮤니티를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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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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