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동문학가 나탈리 배빗이 지난달 31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71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뉴베리 상을 비롯해 2013년 미국 예술문화 아카데미가 주는 E.B. 화이트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화려한 경력과 명성을 자랑하는 작가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는 이유는 1975년 출간된 작품 “Tuck Everlasting”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출간 이후 미국에서만 4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으며 한국어를 비롯한 27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한국에서는 ‘트리갭의 샘물’이라 번역), 2차례의 영화화를 비롯해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아동문학 작품으로는 매우 드물게 ‘죽음’이란 문제를 지적이고 통찰력 있게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뉴햄프셔 트리갭이란 시골에서 살고 있던 11살의 소녀 위니가 숲속에서 신비의 샘물을 지키고 있는 턱 일가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턱 일가는 위니에게 샘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서 그 샘물은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샘물임을 설명해 준다.
우연히 이 샘물을 마셔버려 영생을 얻게 된 턱 일가의 아버지 앵거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위니에게 “영원히 사는 삶은 저주와도 같은 것”이라 말한다. 그는 위니에게 “위대한 자연의 순환”에 대해 설명하면서 “순환의 바퀴에는 태어남과 죽음이 나란히 있으며, 완전한 순환이야말로 축복”이라 들려준다. 하지만 위니에게 호감을 품고 있던 틴에이저 아들 제스(하지만 그의 실제 나이는 104살이다)는 위니에게 샘물이 들어있는 병을 건네주면서 17세가 되면 마시고 결혼하자고 말한다.
소설은 먼 훗날 턱 부부가 트리갭을 다시 찾는데서 끝이 난다. 황량한 들판과 숲이 들어서 있던 트리갭은 미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교외주택단지로 개발되었고 이들의 발걸음은 (자신들이 그토록 마지막 안식처로 삼고 싶은) 묘지로 향한다. 이곳에서 그들은 위니의 무덤을 발견하고 위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한편, 그녀가 그 샘물을 마시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나무들이 잎사귀를 떨구는 가을이 깊어가는 탓이기도 하고, 최근에 접한 부고 때문이기도 하다. 친구의 부친이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그 분의 부고는 준비된 죽음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올해 연세가 아흔 둘이셨던 고인은 이북에서 내려와 자수성가하신 분이셨다. 그 연배로는 드물게 가정적이고 부인과 자식들에게 다정다감하셨던 고인은 부인을 먼저 보내고 아들 내외와 함께 사시다가 1년 전 자청해서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세월이 더 지나 내가 정신 줄 놓거나 자리보전하고 누우면, 그때 가서 아이들이 나를 요양원에 보내기는 더 힘들 것”이라는 말씀이었다고 한다.
유쾌한 성정으로 그 곳에서도 주위 노인들과 직원들에게 활력소 역할을 하시던 그분은 흩어져 있는 가족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게 2주 정도 병상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미국에 사는 고명딸을 기다리셨던 때문일까. 딸 내외가 도착하고 사흘 만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걱정은 2주 휴가를 받아온 딸 내외가 본인 때문에 휴가를 병원에서만 보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고.
삶의 마지막을 본인 의사대로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 케이스는 본인의 준비에 더하여 행운도 따라준 경우임에 틀림없지만, 원래 행운도 본인의 준비가 있을 때 따라 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내 삶도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자각과 함께 이 ‘준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우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들에게 교훈을 주겠다는 거창한 다짐은 아니고 가족 친지들, 직장 동료들 그리고 일상에서 잠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과 기분 좋은 시간, 작은 의미를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혹은 해야 할 일과 하늘의 섭리를 분간하는 지혜를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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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국제 로타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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