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세를 가늠키 힘들게 했던 혼돈과 불확실성의 운무가 걷히고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승자로 우뚝 섰다.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모두가 설마 했던 의외의 결과이자 이변이다. 2016년 대선을 휩쓸었던 ‘트럼프 현상’이 ‘트럼프 대통령 탄생’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의 승리는 새롭고도 무거운 정치적 질문을 미국사회에 던지고 있다.
선거 전까지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서 온데다 트럼프에 대한 전통적 공화당원들의 지지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론조사는 숨어있던 트럼프 지지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대선전 내내 지지율에서 밀렸던 트럼프 진영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트럼프 지지 표심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들이 이런 희망을 가진 것은 지난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사례 때문이었다. 당시 민주당 후보로 나선 흑인 탐 브래들리는 여론조사에서 상대인 공화당의 조지 듀크메지언 후보에 압도적으로 앞섰다. 하지만 결과는 브래들리의 패배였다.
당시 전문가들은 “본심과 다르게 소수민족인 브래들리에 호의적인 것처럼 응답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른바 ‘역 브래들리 효과’(Reverse Bradley Effect)였다. 트럼프의 예상 밖 승리도 ‘역 브래들리 효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 때문에 그를 지지하면서도 마음을 숨긴 유권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얘기다. 여론조사는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데 또 한 번 실패했다. 후보 클린턴에 대한 일부 유권자들의 피로감도 트럼프의 당선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의 당선은 앞으로 미국사회에 격변이 몰아칠 것임을 예고한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하는 백인들을 대변하는 ‘아웃사이더’였다. 인종차별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증오를 반대하는 문화운동인 ‘정치적 올바름’에 비판적이라는 것은 트럼프의 미국이 정책적으로나 이념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임을 시사해 준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를 표방해 온 만큼 관련 정책 기조 역시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는 기득권에 대한 폭넓은 반감과 변화에 대한 일부 유권자들의 열망을 발판으로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권부에 진입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닌 ‘인사이더’가 된다. 한 정파의 후보가 아니라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변화 속에서도 국민들과 금융시장, 그리고 국제사회에 신뢰와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고와 접근이 필요하다.
당선의 영광은 일순간이다. 반면 국가경영은 냉엄한 현실이다. 그 현실 가운데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미국사회의 이념적 양극화이다. 미국인들 사이에는 ‘비관주의’와 ‘정치 혐오’가 팽배해 있다. 갈라진 사회를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면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수행해 나가는 데 필요한 동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
대외적으로 땅에 떨어진 미국의 위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책무도 있다.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국제적으로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지칭돼 온 미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렸다. 물론 여기에는 트럼프 자신의 책임이 컸다. 후보들을 둘러싼 잡음과 외부세력 개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미국의 무엇이 다른 국가들보다 나은 것인지 선뜻 자신할 수 없을 만큼 도덕적 기반이 무너져 내렸다.
후보 트럼프에 대해 유권자들은 대단히 높은 비호감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에 선출됐다. 클린턴 지지자들로서는 뼈아픈 패배겠지만 국민들이 선택한 만큼 그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아무쪼록 합리주의와 상식, 그리고 이성의 바탕 위에서 운영되는 ‘트럼프의 4년 국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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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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